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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전ING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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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Mar 25. 2022

그리워 그려 본다.

엄마보다는 아버지를 많이 닮은 . 키나 얼굴형 같이 겉으로 드러난 외모가 엄마랑 닮은  하나도 없다.  닮은 거라곤 피부가 건조하고 머리숱이 적다는 정도? 어릴 , 언니와 동생은 머리카락도 길게 길렀는데  이발소 의자 위에 빨래판을 놓고 앉아서  짧게 했다.    중에서 대구로 가서 공부한 사람도  혼자라서 내가 너무 싫은 건가, 혹시 주워왔나 하고 생각해 보기도.  다섯 형제가 나눠 가져야 하는 엄마의 관심에    갈증이 났지만 익숙해져 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난 아주 우연히 엄마를 도자기나 돌 위에 그려본다. 엄마는 어쩌면 살아계실 때보다 지금 내게 훨씬 가까이 있다. 내가 엄마를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와는 달리 나는 모두에게 그 리듬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엄마와 같이 했던 그 순간들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 속에서 현재하고 현전하고 있다.

엄마, 아버지와 신작로 앞 버스정류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거리를 구경한 날,  난 그 의자에서 고흐의 의자 그림을 연상하고. 엄마가 혼자 있는 그곳 아래채에는 오빠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새벽녘의 집, 쨍쨍한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은 무표정한 엄마. 햇빛 아래 마당에 서 있던 엄마. 싱크대에서 조기를 손질하던 아버지. 병원에서의 엄마. 이삭 줍는 여인 같은 포즈의 엄마.  엄마가 돌아가신 그 겨울에 형제들이 줄지어 산소에 가던  날.                       

이렇게 나는 엄마를 늘 만나고 있기 때문인지 엄마가 있는 산소를 가고 싶지 않다.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살던 집에 가면 바로 뒷산에 산소가 있는데도 굳이 가고 싶지 않다. 그곳보다는 내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엄마는 존재한다.  엄마를 그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과 음악이 필요하다. 그리고 엄마의 사진들을 본다. 그 속에서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그때의 감정, 느낌, 사건들. 이야기가 더 선명할수록 더 그리고 싶고 그리기가 훨씬 수월해지며 그 속에 녹아든다.  


나는 마루 끝에 누워 있다.

바람이 내 몸을 간질이며 지나가간다. 눈을 감고 느끼는 바람이 너무 좋다.

바람은 소리도 내는구나.

나는 바람소리도 잊고 살았구나.

바람은 어디든 갈 수 있네.

마루 끝에서 느끼는 햇살

그 햇살 사이로 나뭇잎이 반짝인다.

눈을 뜨기 힘든 따스한 온기. 엄마는 어디 있지?



하나의 리듬을 붙잡기 위해서는 먼저 그 리듬에 붙잡혀야 한다. 그 리듬의 지속에 고스란히 몸을 내맡기고 '되는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음악을 즐길 때나 언어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이다.

<리듬분석> 앙리 르페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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