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영 Jul 18. 2022

 22. 할아버지와의 이별


 나는 열세 살의 소년입니다.

 지금까지 슬픔이라는 것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러한 것은 나하고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기고 있었나 봅니다.

 

 그날은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학교 담장에는 노란 개나리가 피어있고, 공원의 울타리도 노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쯤 지나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뿐만 아니라,  시간마다 바뀌는 선생님들도 새롭고 모든 것이 초등학교와는 달라 호기심에 찬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러한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믿을 수 없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어떠한 글이나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셨고, 나도 할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키가 컸다고, 밥을 잘 먹는다고, 시험 성적이 우수하다고, 귀가 꼭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또, 동생을 잘 보살핀다고, 등등 그냥 내 행동 모두가 할아버지의 기쁨인 것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무슨 큰 일이라도 한 것인 양 어깨가 으쓱 올라갔지요.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내가 단상에 올라가 공로 상을 받는 모습을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려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빼앗아 갔습니다. 또 중학교 입학식도 취소되어 멋진 교복을 입은 의젓한 모습으로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사진도  찍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할아버지의 그 푸근한 품에 안겨 '우리 종손'하며 궁둥이를 토닥이던 자애스러운 음성을 들을 수가 없겠군요. 돌이켜보니 할아버지는 나를 수없이 많이 안아주시며 예뻐해 주셨는데 나는 한 번도 안아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카드에만 써서 드렸을 뿐 직접 해드린 적도 없군요.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전화 자주 드려라."라고 하셨는데 대답만 하고 만 셈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백세시대라는 말을 자주 하길래 당연히 할아버지도 30년은 더 사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우매한 사람인가 봅니다.

 후회스러운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TV에서만 본 적이 있는 장례식장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전염병 때문에 아이들은 오지 말라고 하셨지요.

 할아버지의 사진이  하얀 꽃들로 둘러싸여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 집에 들어서면서 '할아버지' 하고 불러도 그 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아이고 우리 손자 왔구나.  허허허.' 하는 소리는 허공을 맴돌겠군요.

 나와 동생은 예쁜 카드에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 내 마음을 다 전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보실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내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한 채로 화사한 봄날은 가고 있었습니다.  개나리 꽃은 떨어지고 마당에는 하얀 목련이 피어나고 있었지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어요. 매일을 화창하기만 하던 날이었는데 저녁때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창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내가 전화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받으시며 "아이고 우리 손자 보고 싶었어. "하고는 매우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목소리였지요.

 그런데 벨이 두 번 울려도 받지 않았을 때서야 나는 '아차'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더욱 그리워져서  메시지를 남기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제 생일에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답장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꼭 씩씩하게 자라서 성공하겠습니다.

 이렇게 일찍 돌아가신 게 너무 슬프지만 하늘나라에서 잘 보고 계실 거라고 믿어요.

 하늘에선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사랑합니다. 

 어버이날인데 선물을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했습니다.

 

 봄비는 꽃들을 마냥 적시기도 하고, 또 같이 울어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서도 비가 내릴까요? 그곳에는 늘 화사한 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 댁에 간다고 해야 되겠군요.

 혼자 마중 나오신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웃으셨지만 쓸쓸해 보였어요. 

 내년 설 날부터는 할머니 혼자 세배를 받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나는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습니다.  이제까지는 할머니보다 키가 더 커졌는데도 할머니가 나를 안아주시곤 했는데 앞으로는 내가 안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손자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할머니를 안아주는구나. 세상에 기특하기도 하지." 하며 등을 토닥이셨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목이 메어왔어요.

 "오, 그래 그래."하시는 할머니도 나처럼 속으로는 눈물짓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와 제가 잘 보살펴 드릴게요.




















이전 21화  21. 승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