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영 Jul 29. 2022

 24. 다음 생애의 행복을 꿈꾸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침나절의 공원은 한 여름인데도 선선하고 상쾌하다. 

 철봉에 매달린 사람,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 등 여유로운 일상이다.

 공원을 가로질러 등교하는 학생들이 활기를 더해준다.

 키 큰 나무 아래의 정자에 머리가 모두 희끗한 여인들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하나둘씩 모인다.

 가지고 온 커피가 든 보온병, 빵, 뻥튀기 등을  꺼내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춘분 씨: 저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 공부만 하면 되니. 나도 저런  때가 있었건만 왜 그렇게 공부하기 싫었는지 후회막심해요.

 하지 씨: 그러게 말이에요. 공부 열심히 했으면 평생 고생 안 하고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추분 씨: 내 친구는 항상 일등만 하더니 글쎄 미국 유학 가서 박사 따고 교수가 되어서 얼마나 멋지게 사는지 몰라요. 결혼도 안 했으니 걱정거리가 있나 얼마나 편하겠어요.  결혼해서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우리를 이해도 못할 거예요.

 동지 씨: 우리 때는 결혼 안 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는데 왜 안 했대요?

 추분 씨: 나 같은 사람이나 결혼은 무조건 해야 되는 줄 알았지 잘 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했나 봐요. 늙어서 자식이 없으니 허전할지는 몰라도 평생을  마음대로 살았을 테니 얼마나 좋겠어요.

 춘분 씨: 내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공부 열심히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결혼을 해도 멋진 남자 만나서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은데 내세가 있기는 할까요? 하여튼 우리 영감 같이 평생 속만 썩이는 사람하고는 결혼하는 게 아니었어요.

 하지 씨: 결혼할 때야 다 좋게 보이니까 한 거죠. 살아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알 수가 있나요? 내 세는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불가에서는 이승에서 좋은 일을 해야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나는 다음 생에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도 목소리 좋다는 소리 들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배 나온 것은 쏙 빼고 날씬한 몸매로 춤도 추고 얼마나 화려하고 좋을까요. 호호호. 그때는 이승의 남편 같은 수전노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아이고, 영감 생각하니까 갑자기 혈압이 오르네. 나는요, 백화점에 가서 옷 한 벌을 사  입은 적이 없다니까요.

 동지 씨: 영감님은 돈이 많겠네요. 나도 팔십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자그마치 오십 년을 종살이한 거나 뭐가 다르겠어요. 게다가 시부모뿐 아니라 시집 식구 들은 다 상전이었잖아요. 한평생 뼈 빠지게 살아온 결과가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것 밖에 뭐 있나요?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억울한 삶이에요.

 추분 씨: 어찌 생각하면 지난 세월이 일장춘몽 같기도 하다가, 또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도 힘에 부치는 긴 세월이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죽어도 못 할 것 같아요. 아무튼 인생이라는 것이 허무하기 짝이  없어요. 남편이라는 인간이 살갑게 대해도 힘든 날들인데 더러운 성질만 부리고. 그것을 다 받아주고 살았으니.

 나는 다시 태어나면 남자가 되고 싶어요. 이생의 남편은 여자가 되고. 그래서 다시 결혼할 거예요.

 춘분 씨: 뭐라고요? 또 만나 결혼을 한다고요? 미쳤어요?

 추분 씨: 예. 그래서 복수하려고요. 내가 받은 것과 똑같이 갚아주고 말 거예요. 성질 팍팍 부려서 가슴이 터져 나가는 꼴을 보고 말 거야.

 하지 씨: 그래도 그렇게 사는 것은 지겨울 것 같아요. 그냥 포기하고 멋진 남자 만나서 즐겁게 사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동지 씨: 그래요. 또 그 인간을 만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테니 그냥 버리세요. 복수보다는 그냥 마음 편히 사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안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 예요. 좋은 사람 만나서 자식 낳아 자라는 것 보며  사는 것이 행복 아니겠어요? 

 춘분 씨: 맞아요. 그런데 왜 많은 남자들은 자기 부인보다 밖의 여자를 좋다고 할까요? 그럴 려면 애당초에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말아야지, 왜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느냐 고요. 지금 세상은 이혼도 흉이 아니지만, 우리 때는 이혼하면 죽은 목숨으로 여겼으니 참으로 불행한 세대예요.

 하지 씨: 결혼은 뭐니 뭐니 해도 서로 존중해주는 사람과 하는 것이 행복할 것 같아요. 누군가가 그랬어요. 부부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옳은 말 아니에요? 

  남남으로 만났지만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니 한평생을 오순도순 살면 서로가 얼마나 좋아요. 그러면 더 장수할 것 같아요.

 동지 씨: 당연하지요. 찰나와 같은 일생을 웃음으로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거지요. 우리 다음 생은 그렇게 삽시다. 그게 안되면 아예  아름다운 노란 장미로 태어나 사랑만 받고 살아 가면 어떨까요?

 추분 씨: 그럴까요? 참 좋은 생각이군요. 하하하.


 여인 들은 마치 내세의 신으로부터 다음 생애의 행복을 약속이라도 받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얼굴은 새색시 볼처럼 발그레 해졌다.

 이생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기약도 없는 다음 생애에 기대를 걸어볼까?

 가여운 이들.


     

『홀로 방황하는 이들에게』의 '삶'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생각난다

 저승에서 이승의 할아범과 할멈이 만났다. 

  ...................

 "할멈, 나라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산 것이 아니라오. 여인들은 남자 잘 못 만나 고생하고 살았다고 하는데, 남자도 여자 잘 못 만나 신세 망친 사람 많다오. 정말 불쌍한 것은 남자들이라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생각해 보았소?

......................

 어려서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우려의 소리로 산 너머에 있을 무지개를 보고 싶은 모험을 멈춰야 했고, 이 작은 우주에서 벗어나 가장의 면류관을 쓰면 활개를 펴리라 해서 결혼이라는 것을 했더니 거기에는  더 큰 굴레가 목을 조르고 있었소.

........................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에 내 별도 하나쯤 있을 법한데 당신의 별은 없다고 망나니가 칼 휘두르듯 싹둑 자르며, 어쩌다 떨어지는 별똥별이나 주워오라고 하니 숨 막혀 살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아시오? 선화 공주처럼 이쁘지도 않으면서 허구한 날 잔소리는 젠장."





이전 23화 23. 배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