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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Jul 14. 2022

 21. 승무



 한 마리 하얀 나비가 되어 춤을 춘다.

 바알 간 볼에는 창백한 비애가 흐른다. 어찌하여 눈물은 영롱한 이슬방울 같고 게다가 빛이 어릴까?

 티 없이 푸르른 하늘은 차마 쳐다볼 수가 없어 곱게 솟아있는 버선코만 보며 춤을 춘다.

 긴소매를 휘저을  때마다 검은 얼굴이 하늘을 가리고 가슴에 비수를 내리친다.

 열다섯 살 연이의 오색 꿈을 산산이 부수어놓은 그 검은 얼굴은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고, 또 삼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강산은 세 번이나 변하였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강산보다 더 단단하다는 말인가.

 꿈결인가 하여 눈을 떴을 때  가슴에 얹혀있던 악마의 손, 그것은 어제까지 온 가족의 희망이자 자랑거리였던 한 인간.

 아! 제발 꿈이기를.

 그로부터 어린 가슴에 이 세상의 모든 이성은 악마로 자리 잡았다.


 한 공간에서 악마의 천연스러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다.

 가방을 챙겨 오로지 믿을 한 사람 담임 선생님의 집에서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고, 어린 연이를 부모의 허락 없이 데리고 살 수는 없었다.


 부모를 원망했다.

 사춘기 자녀에게 저마다의 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한  부모의 무능함을 탓할까?

 마치 지옥과 같은 시간들은 그렇게, 저렇게 흘러갔다. 


 깊은 산중은 그런대로 마음을 다 잡는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밀려나가는  검은 머리카락은 악마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못 올 곳으로 날아가리라 믿었다.

 하나, 눈 내리는 고즈넉한  산사는 질긴 상념을 불러오고 만다.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려는 듯이 오늘도 춤을 춘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허무로 되돌아오고 만다.

 언제까지 검은 그림자는 눈앞에 어른거릴 것인가?


  연이는 오늘도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를 읊으며 소쩍새와 벗한다.

  내일도, 또 모레도 세월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리라.



얇은 사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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