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아침, 부드러운 헤이즐넛 커피를 마시며 지난 일 년 동안 인스타와 브런치에 올린 많은 사진과 글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불과 일 년도 안 됐건만, 까마득하게 오래전의 일처럼 "이런 일도 있었어?" 하며 새삼스럽기도 하고, 글을 올릴 때마다 비장했던 마음도 생각나 웃음 지어진다. 몰두했던 시간의 흔적들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후한 점수를 주련다.
3년 전 은퇴를 하며, 매일 다니던 일터를 더 이상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은 나를 한없이 우울하게 했다. 홀가분할 줄만 알았는데 그보다 상실감이 몇십 배 컸다. 뭐든 미리미리 준비해야 직성이 풀렸으나 "은퇴"는 대책 없이 갑자기 맞아버린 소낙비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넉넉하게 우산이라도 준비할걸! 후회한들 이미 때는 늦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
우연한 기회에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소품을 만들며,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글쓰기"가 내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소품을 만들고,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해지며, 조금씩 나를 회복하고 치유했다.
그렇게 찾은 내 인생 후반부는 많은 시간을 작업실과 작은 책상 컴퓨터 앞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영양가 없는 공적, 사적 관계들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그동안 맡은 역할에 충실하느라 온전히 바쳐왔던 내 삶의 의무도 많은 부분을 축소하고 생략했다. 다소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이젠 그래도 되지 않나?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가족들에게 괜히 미안하고 내 의무를 저버리는 것 같아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신기한 건 나름의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어서일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던 삶에서 오히려 주위를 돌아보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됐다. 미미하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에 촉각을 세웠던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많이 없어졌다. 오롯이 내 감정에 충실했더니 이제서야 흔들리지 않은 내 삶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나에게 몰두 할 수 있어서 그 어느 해보다 행복했던 한 해였다는 결론이다.
사실 크리스마스트리조차도 지난 몇 년 동안 만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 커버려 번거롭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 전나무의 숲 향이 맡고 싶어져 올해엔 크리스마스 나무를 집안에 들여와 즐길 생각이다. 트리에 달 장식도 직접 만들고 있다. 정원의 여러 꽃과 식재료로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장식을 만드니 의미도 있어 좋다. 화려하고 예쁜 것을 편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꿋꿋이 만들며 힐링하는 중이다. 몰두 할 수 있다는 것!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