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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Jul 23. 2024

우리의 평안을 빕니다

(23.11.05 발행글)


언제부턴가 제사를 성당에 올리고 모시게 됐다.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여서 성당에 다녀왔다. 다른 곳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인 듯 모양이었다. 지금은 끝났음을 알리는 안전 문자가 몇 통 왔지만 다들 귀가하실 때 천천히 안전을 조심하길 바랐다.


성당에 가끔 이렇게 가게 되면 다른 분들은 어디서 외워오시는지 뭔가 기도에 화답하는 말을 읊조리지만 나는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힘을 빼고 눈을 감거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멍을 때릴 때도 많고 딴짓할 때도 간혹 있다.


 


그동안 외운 말이 있다면 ‘고아한 사제의 영과 함께’와 ‘아멘’ 정도여서 아는 말이 나올 때만 같이 읊조린다.


 


그렇다고 해도 뭔가 하나의 종교만을 믿고 하지는 않아서 부처님께 기도하고 싶어지면 경전을 꺼내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어지면 성경을 꺼내든다. 성경은 옛날 아는 사람이 선물해 준 건데 잘 간직하고 있었다. 우주와 링크하고 싶을 때면 명상을 하거나 원석들을 손에 쥔 채로 손에 굴리면서 눈을 감고 의식의 흐름대로 가만히 있거나 한다.


 


 


요즘은 가끔 하느님인가 하나님인가 헷갈릴 때도 많았지만 그분께서 정말로 있으시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리라 나는 믿는다. 그러니 오늘 가서는 하나님께 인사드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멍을 때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아서 간간이 기도를 했다. 항상 그렇듯 내가 하는 기도는 그렇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저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가끔 넘어지기도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죠. 저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말들을 늘려서 순서 상관없이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재생하다 보면 엄청 느리지만 대략 이랬다.


 


 


오늘은 성당에 가서 좋은 말을 하나 배웠다.




평안을 빕니다.




다른 분들과 미사 시간의 끝에 가서 평안을 빕니다, 서로 인사드렸다. 서 있는 채로 몸을 돌려서 옆자리의 분도 뒤에 분께도 하니 기분이 맑았다.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들어 지금도 곱씹고 있었다. 할머니와 삼촌과 맛있는 밥을 사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낙엽이 다 떨어졌다는 이야기와 국화가 피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창밖을 구경했다. 가을이 가는 동안 또 겨울이 오는 동안 우리의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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