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시를 쓰느냐고.
"박제하려고"
예상하지 못한 단어였는지 꽤 놀라는 눈치로 다시 물었다.
"뭘 박제하는데?"
"뭐긴, 사랑이지."
박제(剝製).
동물의 가죽을 곱게 벗겨 썩지 않도록 한 후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것.
박제한 동물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얼핏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내가 시를 쓰는 이유를 이보다 더 명징(明澄)하게 설명할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인간은 간사하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
아무리 지금 사랑을 노래해도,
조금만 수틀리면 금방 식는 게 마음의 속성이다.
마음이 어르고 달래 반죽하는 사랑도 다르지 않다.
시시각각 빛깔도, 형태도, 크기도 변한다.
심지어 대상까지.
그러니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마음 상태를 남기기엔
시만 한 것이 없다.
내 사랑은 변해도 시 속에 박제된 사랑은
이 순간의 생기를 영원히 간직할 테니까.
50년쯤 지난 후, 나를 알던 이들까지 모두 사라져도
내가 남긴 시 한구절이 어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부디 사랑을 온전히 박제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