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렌 Feb 18. 2024

단점 부각

드러내는 것이 강점

내 이상형은 본인의 단점을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오래 만날수록 단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걸 숨기지 않고 말하는 힘이 자석처럼 나에게 달라붙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누구랑 살 거야?"와 "뭐 좋아해?"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전자에는 "왜 둘 중에 골라야 해? 그냥 고아로 살래."라고, 후자에는 노란색, 남색, 흰색, 강아지 같은 짧은 단어를 쉽게 내뱉었다.


후자의 답변에 빠진 게 있다. 고기. 심각하게 좋아했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 먹어서 우리 엄마는 소시지라도 사서 내어주셨다. 안 그러면 밥을 남겼다. 당당하게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살찐 걸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많이 먹어서 살찐 거라고 말하기엔 용기가 없었다. 법적 어린이 시기에도 부끄러움을 알았다.


추가로, 리듬 게임 중독자였다. 최대 10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만 지켜봤다. 키보드를 때리면서 박자 맞추는 게 즐거웠고, 경도(경찰과 도둑) 하자며 나를 놀이터로 이끌고 가는 친구들보다 게임 속 나와 같이 캐릭터로 춤추는 사람들과 더 잘 맞았다. 왜 숨을 헐떡이며 누굴 잡고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체육 시간에 나는 심장이 약하다며 거짓말도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헥헥거리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교실로 들어갔다. 바람 들어오는 창가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10kg을 감량했다. 어느 날 내 몸을 봤는데 이건 위기였다. 당시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도 같이 고쳤다. 손을 봤는데 울퉁불퉁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절제력이 강했다.


이게 청소년기의 특징인 줄 알았는데, 성격이었다. 지금도 한 번 꽂히면 단번에 이행한다. 오늘 아침에 만난 이 씨(ㄱ)와 3월에 관악산에 가기로 했고, 오후에 만난 이 씨(ㄴ)에게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는 것을 약속했기에 집에 와서 찾아보고 가입했다.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탓에 아쉬운 게 남았다. 그래서 나에게 강한 절제력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과거엔 마음속 남은 응어리를 후회라고 표현했다. 이젠 배움이라고 말한다. 후회는 할 필요가 없었다. 아는 만큼 행동한 거다. 그 시기에 있는 내가 나다.


단점을 드러내는 사람은 깨달음을 공유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어제오늘 내가 못하는 것을 말하고 다녔다. 난 목적지향적인 사람이라 목표가 있으면 달려가는데,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방황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


처음에는 입으로 말하기 위해 입술을 오므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여러 번 말하고 나니 반성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내린 결론. 그게 민폐인 걸 알면 티 내지 말고 고통을 스스로 풀어내. 다른 사람 힘 빠지게 하지 마.


말하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풀었을 때 상대가 "네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 '나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인가?' 하면서 갑자기 실행하는 힘이 실렸다. 매번 나이를 먹으면서 아직도 애처럼 갑자기 튀어나간다.


이런 나를 만들어준 모두에게 마음이 실린다.

이전 15화 여행의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