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밥상에 밥그릇과 국그릇, 오른쪽엔 숟가락과 젓가락, 위에는 둘러싼 반찬이 있는 모습이 당연했다. 키위 할머니의 손길은 다르다. 브로콜리, 당근, 시금치를 다져 치즈와 계란을 넣은 파이에 자두 소스(plum sauce)를, 연두콩 같은 pea와 양고기, 고구마칩에 버섯 소스를 먹는다. 작은 그릇 여러 개가 하나의 큰 접시로, 젓가락은 칼과 포크로 바뀌었다. 밥상머리 앞에서 떠들지 말라고 혼났던 과거는 뒤로하고, 지금은 밥 먹으면서 말하느라 애먹는다. 한 입을 적게 먹는 게 서구권 예절이라 들었건만 그간 익숙해진 나의 습관으론 따라갈 수 없다. 여느 때처럼 한 숟갈 왕창 퍼서 먹는 게 좋고, 말하는 건 다음으로 미뤘다. 끄덕인다.
"너는 Yes/No 전부 끄덕여서 내가 네 얼굴을 봐야 해." / "생각해 보니 제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 기억이 없네요?" 크게 웃었다. 강력하게 "No"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어로 말할 때도 아니,라고 말한 기억이 없다. 부정의 표현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왜 말하지 않았을까? 나도 알 수 없다. 말을 듣고 있다는 끄덕임과 좌우 회전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아이스크림이 No를 불렀다. 얼마 전 야간 근무를 하면서 잠을 깨려고 쉬는 시간 없이 먹으며, 일주일에 3번 이상 음주한 덕에 살이 급격하게 불었다. 겨울이 다가오는 바람이 불었지만 더는 찌고 싶지 않아서 달렸다. 저녁 9시, 할머니는 책을 읽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스크림 먹을래?"라고 하셨다. 건강한 것은 또 다른 깨끗함을 부른다 했던가. 달리기 한 내 몸에게 설탕을 선물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 먹고 싶었다. 아이스크림의 차가움과 부드러움이 마음에 든다. 한국이었다면 저녁에 무엇을 할머니랑 같이 먹었을까? 곶감, 찐 감자, 옥수수, 땅콩, 김치전 혹은 비비빅.
73세 키위 할머니는 음식을 준비하기 전 JBL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즈를 틀어두셨다. 밥을 먹을 땐 잠시 눈을 감으며 감상하다가 악기를 추측하셨고, 아는 작곡가가 나올 땐 배경을 알려주셨다. 한국 할머니는 내가 어떤 반찬을 먹고 있는지 보고 계셨고, 그릇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냉장고로 가셨다. "원래 생선 머리가 제일 맛있는 건데"라고 하시며 몸통 살은 전부 나에게 넘겨주셨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배웠나, 20대 후반인 나에게 똑같이 한다.
냉장고. 뉴질랜드 냉장고엔 치즈가 한 층을 차지하고 있으며, 잼인지 아닌지 모를 수제 유리병이 가득하고, 마당에서 따온 레몬 반토막이 있다. 블랙티와 커피를 마실 때 컵 상단 1cm를 차지하는 우유, 중국에서 만든 아시안 소스, 토마토소스, 허브 소스가 있다. 한국에선 냉장고가 3대였다. 김치 냉장고, 냉동 전용 그리고 기본. 날짜가 적혀있는 김치, 종류도 기본 5가지 이상, 오이소박이, 김치. 더 이상 적을 수가 없다. 그립다.
무엇이 들어있으나 그들의 마음은 같았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살기. 무엇을 먹으나 나는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눈앞에 있는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기. 뭐가 됐든 잘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