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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Park Dec 03. 2023

흘러가는 것. 흘러가지 못하는 것.

안녕을 보내요.

고요히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행동을 멈춰 있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행동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빛의 방향과 흐름도 색감도 변하며. 내 마음의 양상도 변한다. 그 마음의 주인만 그대로 두고, 마음의 방향과 깊이와 결이 달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나만 두고 흘러가던 하루를 나는 기억한다.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안녕을 건네지도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이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몸을 움직이지 못해 흘러가던 하루를 기억한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라서. 오랜 숨을 내뱉는 오전의 싱그러운 햇살이나 다소 짙어져 내 피부에 가라앉는 해 질 무렵의 햇살에도 나는 쉬이 잊지 못하고 떠올린다.

진득하게 내려앉는 오렌지빛 햇살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눈을 감으면, 어느 겨울날 함께 먹었던 단출한 저녁 식사라든지. 우리 집 오피스텔 창밖을 내려다보며 건너편 빌딩 상호의 한자를 읽어주던 당신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를 떠올린다.

혹시 어린 모습을 보이면 쉽게 질려 떠나갈까 당신 옆에서 좀처럼 편히 입을 떼지 못했던 나는 물끄러미 당신의 잔잔한 농담과 세상 이야기를 듣고. 내가 눈을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당신을 위해 고동색 원목 탁자를 희미하게 웃으며 응시하면서. 이야기에 몰입한 당신이 잠시 웃을 때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당신의 웃는 얼굴을 몰래 바라보고.

침대에서 잠든 당신을 안고 나도 맘 편히 잠들어보고 싶었지만. 잠시 머물다 갈 당신의 숨소리마저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당신이 일어날 때까지 숨죽여 듣던 날을 떠올린다.

마지막 인사를 세 번째 나누고도 이번이 정말 끝은 아닐 거라 한편에는 미련을 여전히 남겨두고.

전하지도 못할 인사를 계절마다 남기며.

가을을 잘 보내. 겨울을 잘 보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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