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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Park Nov 26. 2023

새로운 한 주를 위한 의식.

손톱을 정리하는 일.

작고 귀여운 손톱깎이

“이거 다른 분들 선물은 없어요.

그러니까 비밀로 하셔야 해요!!”

일본을 다녀온 부사수가 작은 헬로키티 얼굴이 달린 손톱깎이를 선물로 주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감기인지 고운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며칠을 힘없이 앓으면서도 일을 해내는 게 안쓰러운 지경이었는데.

 일본으로 출국하던 날은 곱게 땋은 머리와 뽀얀 얼굴에 복숭아 빛을 들이고 온 게 너무 예뻐서. 여름 끝을 지나 가을 초입의 들어선 싱그러운 공기와 작고 맑은 유리구슬로 흩어지는 것 같은 가벼운 햇빛도 다 그녀를 위해 비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튼 그렇게 본인의 직장 생활 중 처음으로 맞이한 여행에서 일과 연관되기 쉬운 사수인 나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사 왔다는 마음도 너무 귀하고 예뻐 차마 내 더러운 손톱을 깎아도 되나 싶었지만 오늘의 손톱정리에는 큰 마음을 먹고 그녀가 사준 키티 손톱깎이의 포장을 뜯어 꺼내본다.


 손톱을 정리하는 일은 사뭇 경건하다. 손끝을 단정하게 하는 일은 나의 일주일 시작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루틴으로 위생과 청결의 문제도 있지만 잘 다듬어진 손끝으로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삶에 대한 나의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업무를 수행하고 일상에서 무수한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 ’ 일주일을 올곧음과 단정함으로 무장하고 나를 업무 또는 사람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신뢰를 주고 싶다.‘라는 삶에 대한 나의 작은 아부랄까.


저를 잘 부탁드립니다. 예쁘게 봐주십시오.

경건한 나의 태도와는 다르게 손에 쥔 손톱깎이의 연륜과 찰떡궁합도 아주 중요하다. 오늘은 익숙한 오랜 친구가 아닌 새로운 친구와 호흡을 맞추는 날이다. 제법 긴장이 올라온다.


사실 어떤 가정집이든 손톱깎이 날이 무뎌져 손톱을 자르기보다 무겁게 꼬집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면 쉽게 교체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새 손톱깎이가 ’ 이렇게 경쾌하게 손톱을 자르는구나 ‘ 는 30년 인생 처음 알게 된 느낌이었다. 30살이 되어서도 처음 해보는 일이 있고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더 이상 깰 것이 없다고 여겼던 게임에서 우연히 소퀘스트를 달성한 성취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한 치의 주저함 없이 깎이는 손톱을 바라보며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떤 마음은 날이 돋아서 입에 물리는 것들을 예리하게 망설임 없이 말끔하게 잘라내지만, 어떤 마음은 무뎌지고 녹슨 날을 영혼 삼아 입에 물린 것들을 좀처럼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질깃하게 물고 늘어져 한 번 더 턱을 물리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두 경우 잘려나간 모양도 상이하다. 비교적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손톱깎이로 자른 손톱은 너무 쉽게 잘려나가 그 결단력이 사뭇 당황스럽기도 하다. 단면이 깔끔할지언정 밑이 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남긴 손톱의 끝이 예리하다. 이대로 손질을 마무리하면 다듬어지지 않은 예리함이 나의 몸 어딘가에 닿아 의도치 않은 생채기를 낸다.


두 번을 물려서 잘린 경우에는 한 번의 움직임으로 잘리지 않았을 때 내가 자르고자 했던 방향과 각도와 여유 길이, 모양을 한 차례 더 생각한 후 마무리를 짓기 때문에 역시 예리하지만 생채기가 날 우려는 덜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열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잘렸다. 경쾌하고 거침없던 움직임은 참 시원시원했지만 그래 미처 챙기지 못한 예리함을 둥글게 다듬어야겠네. 우리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한편으로 예리한 마음과 무뎌진 마음을 어떻게 대하고 다뤄야 하는지 나의 “마음의 날”이란 삶의 요소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존재가 가볍고 나약한 우리는 외부에서 부는 바람에 마음이 곧잘 일렁이고 흐트러지며 탈출구가 없는 의심에 끊임없이 휩싸인다. 이를 타파할 수 있는 건 마주한 감정 자체를 겉으로 느끼는데서 만족하지 말고 본질을 탐구하는 노력이 아닐까. 감정에서 한 발 떨어져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마음을 나누고 다루는 일에도 각자에게 맞는 속도와 정도가 요구된다. 그 마음은 나 자신에게 향할 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 과정은 매주 일요일 저녁 맞이하는 손톱정리와 닮아있다. 자라나는 마음의 모양을 살피고 다듬고.


살면서 손톱깎이를 선물로 받아본 일이 있는지. 앞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계속 있을 테지만 손톱깎이란 ‘없으면 너무 아쉽고, 찾을 때까지 생각나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녀가 나를 생각해 준 마음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선물이 아니었다면 손톱을 정리하는 행위와 정리되지 못한 마음을 단정하게 다듬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있었을까. 반복되는 행위를 무의미하게 마음 없이 기계처럼 수행하기보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한 노력에 소홀히 하지 말자고 되뇌어본다.


 다시금 돌아보건대 손톱을 다듬는 일, 그리고 단정해진 손끝을 보는 행복과 만족. 월요병을 이겨내기 위한 일종의 마음 잡기, 명상과 같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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