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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Park Dec 11. 2023

걷는 습관에 대한 단상

삶의 걱정들을 다루는 법

속절없이 흔들리는 삶, 그럼에도 누군가 보기에 감정의 큰 동요 없이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지탱해 주는 힘에는 오랫동안 걸어온 나의 습관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30여 년의 삶에서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불안'과 함께 해온 내게 그 조마조마함을 그저 견뎌낼 수 있도록 해준 데에는 '무작정 걷기', '멍하니 걷기'가 아니었을까.

방금 전까지는 눈앞에 있었던 광경, 차, 새들이 나를 지나쳐 저마다의 길을 가버리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산, 나무, 집 같은 것들을 지나쳐 그것들이 마치 나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삶을 옥죄는 불안과 걱정들을 실로 내가 맞닥뜨리는 순간이 올 때까지는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걷기'라는 미약한 발버둥을 치면서. 이와 비슷하게 여겨지는 맥락에서 '걷기'를 통해, 이런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의가 아닌 생각들을 하며 걷다 보면 얼마간의 긴장과 불안은 해소되고 고요한 안정감이 다소 찾아온다.

 단순히 운동적 측면에서 걷기에 대한 효과는 많이 알고 있겠지만, 심리를 안정되게 하는 측면에서 걷기는 탁월한 활동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나 에스키모 족은 마음의 화와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찰 때 무작적 얼음 평원을 걷는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그 감정들이 풀어지는 순간이 오고, 그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돼 걸어온다. 그래서 그 길은 '뉘우침과 이해, 용서의 길'이라고 한다. 또한, 몇 년 전 여행지에서 읽었던 '하정우의 걷는 사람'이라는 책에서도 역시 걷는 습관 속 길 위에서 얻는 육체적 피로와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감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오랜 시간 걸어온 뚜벅이의 경험을 되돌아 길 위에서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중-고등학교 집과 학교를 수없이 오가던 통학 길이 먼저 떠오른다. 언제나 답답한 감정과 고민들을 잊고 삶의 경이를 깨우치게 했던 것도 늘 그 길 위에서 마주한 계절과 인지하지 못했다면 사소한 광경이지만, 인지를 하고 나면 그마저도 자연의 섭리나 어떤 규칙들이 가득한 풍경이었으니. 10대 시절 내가 마주한 시골의 벚꽃길이나 흙먼지가 날리지만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던 포근한 시골 풍경, 초 여름이면 어디선가 풍겨오던 아카시아 꽃 향기, 가을이면 멀리 물들어가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저마다의 움직임으로 흔들리고 있는 나무들. 그것은 꼭 마치 산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져 메마른 건조하고 쓸쓸함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 같은 사계절의 풍경을 통해서 나는 두려움도, 불안함도, 즐거움도 다 한 때이며 그 어떤 순간도 영원하지 않고, 그저 지나갈 뿐이라는 걸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허무'한 관점에서의 "모든 순간은 그저 다 한 때, 지나간다."가 아닌, 그래 이 불안과 걱정들이 현실이 되어 때론 나를 세게 때릴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걱정 대비 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인간이 하는 일에 해결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 더욱이 어른이 되면 일 적으로든 어떤 형태의 관계든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해 좋은 방법을 모색할 수도, 그 시도가 실패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움직이고 부딪혀 해결과 해소를 위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없이 위로가 되고 그 시도를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데에는 걷는 습관이 8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불안과 걱정을 두고 온 어떤 저녁에는 앞서 언급한 희망찬 계절감이 아닌 때로는 일정하게 켜진 가로등 아래를 지나며 어떤 그림자는 빠르게 나를 지나쳐 길게 늘어진 채로 나를 물고 늘어지는 기분을 주기도 하고, 뒤로 가는 듯하다 다시 나를 앞서며 불안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저녁과 밤 사이.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문제들과 아쉬움 불안 미련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걷다 지쳐 집에 돌아와 잠이 들어 아침이 되면 결국은 다 끝나있는 감정들이었고, 문제들이었으며, 더욱이 새로운 날에는 새롭게 맞아야 하는 문제들과 또 다른 걱정들이 한 아름이니.. 그저 미약하지만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가야 하고, 걸어서 지나쳐야 하고, 주체적으로 부딪혀 해결해야 하고. 이런 작은 움직임들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 박준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 내 그림자가 길게 따라가고 있는 그림자는 언젠가 버스 옆자리에 함께 앉고 싶은 그림자다.


박준 - 모래내 그림자국


폐부를 관통당한 것 같은 명문장이라고 감탄하고 싶은 것이 아닌, 굳이 시에 국어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해석하는 시도를 해보자면 그림자가 '불안, 두려움, 걱정'과 같은 감정이라고 할 때, 버스 옆자리에 함께 앉고 싶다는 것은 인생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수반되는 감정들을 마치 친구처럼, 내 옆자리 동료처럼 함께 나란히 가는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걷기로 시작해서 불안/걱정 해소에 대한 삶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로 마무리되는 글이지만 걷는 습관이 단순 건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불안을 다루는 나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가를 정리하기 위해 주절거린 글인 만큼... 일요일 저녁... 다가올 새로운 한 주를 기대와 걱정으로 보내는 이 시간이 아쉬워 뭐라도 끄적여본다. 요즘은 브이로그도 찍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가오는 3월부터는 나의 이런 흘러가는 생각에 대한 기록을 조금 더 성심껏 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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