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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Dec 03. 2023

이상한 태권도장

나는 태권도 유단자로, 수원시장배 태권도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었다. 종이 신문만 존재하던 오래전에 내 이름이 경인일보에 실렸다. 00중 3학년 유수경 핀급 금메달. 

흔치 않은 나의 이력은 사회생활을 하며 이롭게 작용했다. 작은 체구, 가느다란 목소리, 조금 여리여리한 이미지는 반전 매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태권도를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남자애들만 득실거리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강요로 옆 동네 태권도장에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이 태권도장을 보낸 이유는 두 가지였다. 겁 많고 잘 우는 큰딸이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 학원 한 개의 교육비로 ‘태권도’와 ‘공부’ 두 가지를 할 수 있다는 경제적 혜택.     


내가 다닌 태권도장은 좀 이상한 곳이었다. 태권도 교육비만 내면 무료로 공부를 봐주었다. 태권도장에는 운동하는 장소 말고도 별도의 교실이 있었는데, 하교한 아이들은 그곳에서 운동시간을 기다리며 공부했다. 운동을 마치면 저녁 9시. 평일 5시간을 태권도장에 머무는 셈이었다. 


태권도장은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중학생들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태권도장에서 공부해야만 했다. 특별한 사유 없이 결석하면 관장님께 빠따를 맞았다. 종일 앉아 공부하다 집에 갈 때쯤, 하루 동안 공부한 것들을 관장님께 검사받았다. 관장님은 문제집 아무 부분이나 펼친 후 질문을 하셨고 대답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빠따를 맞았다. 


종종 관장님께서 오시지 않는 날들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 아이들은 한껏 들떠있었다. 우리는 감시가 없는 틈을 타서 공부 아닌 다른 것들을 했다. 남학생들은 축구, 장기, 동전 뒤집기 같은 놀이를 했고, 여학생들은 좋아하는 오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몰래 나가 간식을 사 먹었다. 그러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관장님께 딱 걸려서 단체로 빠따를 맞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빠따를 맞는 경우는 다양했다. 영어 단어 시험에서 틀린 개수대로 빠따, 떠들다 걸리면 빠따, 지각하면 빠따, 언행이 바르지 않으면 빠따.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말에 교과 학원이 아닌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부모님도 없을뿐더러, 훈육의 말 한마디에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관장님은 아이들에 대해 남다른 마음을 갖고 계셨다.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했고,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그들의 미래가 그려져 걱정되었다. 마음에 이는 감정들은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왜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주어진 환경을 깨고 나와 더 나은 삶을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일, 그것을 숙명으로 여겼다. 그 발판은 공부와 심신단련이었다. 그래서 태권도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켰다. 관장님의 시간과 돈, 체력과 마음을 쓰며 아이들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때려서라도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려고 무던히 애쓰셨다.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의 시기를 보내야 할 중학생들은 관장님 품에서 따뜻한 바람과 잔잔한 파도를 타며 안전하게 보냈다. 태권도장에 단단히 묶인 덕에 유혹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몫을 해내는 어른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관장님께 많은 것을 받았다. 따뜻한 눈빛, 애정, 인정, 믿음. 모두 형체는 없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강력한 것들이다. 먹고 사느라 바쁜, 싸우느라 고됐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보살펴 주셨다.

똑똑하지도 않은 내게 ‘똑순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 운동 못 하고 겁 많은 나를 태권도 대회에 출전시켜 도전, 용기, 성취감, 자신감 같은 내가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하셨다. 진중한 눈빛을 가진 아이라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좌절하고 무너질 때마다 마음을 채워주는 말들을 해 주셨다.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가거라. 넌 할 수 있어."

"너의 뒤에 내가 버티고 있다는 걸 잊지 말 거라."

   

차곡차곡 쌓인 마음들은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게 했다. 눈물보다 웃음 많아진 날들이 늘어가며 세상을 조금씩 밝게 보기 시작했다. 


관장님은 엄하고 무서운 분이셨다. 누군가는 관장님의 교육관이 맞지 않아 떠나갔지만, 내게는 꼭 필요했던 고마운 손길이었다. 폭력과 불안이 가득한 집에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도록 안전하고 따뜻한 도피처가 되어주셨다. 관장님이 내 인생에 손 뻗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관장님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은인이다.      


두 번째 은인도 태권도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함께 빠따를 맞던,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던 조용한 아이. 그 아이도 관장님 덕분에 건강히 자라서 나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관장님의 정서적 보살핌을 받으며 어두웠던 시절을 무사히 건너온 우리 부부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관장님께 여전히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을 만날 때, 글을 쓸 때. 

나는 바란다. 

나도 누군가에게 은인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따뜻하게 손잡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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