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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숙 Aug 13. 2024

흰 꽃들이 가득한 늦봄에 약간 지식적인 탐구에 빠지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라고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일반적으로 공유된 생각일 뿐이라고 여겨진다. 나에겐 진정한 계절의 시작은 겨울이다.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과 갈색으로 메말라버린 초록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채워질 가능성만 가진 그 상태가 나에겐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싹 틔워준다. 

이 아름다운 늦봄에 난 차디찬 겨울을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늦봄의 아름다운 기세에 도저히 대항할 수가 없다. 

이른 봄의 꽃들은 노란색, 분홍색등으로 무채색의 겨울을 바라보던 뇌의 시신경을 새롭게 깨워준다. 앙증스럽고 하늘거리는 꽃잎들이 아가들의 살갗처럼 보드랍고 여려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길목에는 흰색의 꽃들이 사방에 피어난다. 

야광나무 꽃, 아그배나무 꽃, 고광나무 꽃, 아까시나무 꽃, 때죽나무 꽃, 이팝나무 꽃, 찔레꽃, 산딸나무 꽃, 쪽동백 꽃등 대부분의 꽃들이 흰색이다. 

호기심이다. 왜 흰꽃들이 주류를 이룰까? 식물세밀화를 그리면서 호기심은 나이 듦과 상관없이 더욱 강해지는 이유는 자연이 시시각각 보여주는 다양성에 대한 나의 지적인 흥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몇 가지 정보를 알게 되었다. 

한반도 자생 수목 중 거의 80% 이상이 초여름에 개화하지만 요즘은 날씨가 빨리 따뜻해져서 늦봄에 이른 개화를 하는 꽃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초여름에 개화하는 전체 수목 가운데 흰 꽃을 피우는 자생 수목은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다고 한다.  특히 이중 절반 정도가 관목성이라 사람들 눈에 잘 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은 청색, 적색, 녹색의 광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가시광선 파장대에 있는 모든 색은 구별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흰색은 인간의 눈에 있는 3개의 광수용체 (청색, 적색, 녹색)가 동일한 비율로 자극되기 때문에 흰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곤충은 인간과 다르게 명도를 구별할 수 없어 흰 꽃을 인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면 찔레꽃, 아까시나무 꽃 등의 흰 꽃에서 벌과 같은 곤충들이 수분매개를 하고 꿀과 화분을 모으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렇다면 ‘곤충들은 흰 꽃을 잘 구별도 못하면서 왜 흰 꽃들로 모여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흰 꽃들을 찾아오는 곤충들에게 확실한 보상(reward)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곤충의 눈에는 흰 꽃으로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 오면 많은 꿀과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 그리고 풍부한 꽃가루를 얻어 갈 수 있는 풍요로운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이 학습된 결과 일 것이다. 따라서 흰꽃을 드나드는 곤충들에 의해 수분(pollination)이 이루어져 다음세대가 탄생되는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도대체 뇌가 있는 것일까?'

'자신의 생존과 DNA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상(reward)이라는 선물의 필요성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오랜 진화의 시간에서 학습된 세포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속에서 그저 자연과 식물이 가지는 신비로움에 감탄할 뿐이다. 


생각하는 식물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나의 호기심은 지속적이다. 


아까시나무 꽃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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