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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숙 Aug 14. 2024

한 여름 속에 화려한 꽃들의 향연

해가 갈수록 무더워지는 여름을 직면한다.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가는 것이 사실인 듯 여겨지는 요즘 특히 비가 온 뒤 여름의 둘레길은 봄에 비해 다양한 색으로 피어나는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둘레길 초입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닭의장풀 꽃이 신비로운 푸른색을 자랑한다. 풀숲 바위틈이나 관목 아래 사이에서 아침마다 정말 예쁜 색의 꽃을 피워 낸다. 그러다가 해가 중천에 떠 오를 때쯤 연약한 그 꽃들은 사그라진다. 내일 아침이면 또 새로운 생명을 가진 닭의장풀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짧게 주어진 시간 속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소리 없이 지는 꽃을 보면 너무나 소란스러운 인간세상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진다. 태양의 에너지를 농축한 듯한 여름햇살은 비 온 후 숲 속의 습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토양이 머금고 있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초록이 가득한 숲 속 땅 냄새, 낙엽이 썩어 들어가서 만들어진 부엽토 냄새가 가득 찬다. 그리 싫지 않는 이 냄새는 아마도 숲이 살아 있다는 증거 일 것이다.  한참을 걷다 눈길을 닿는 곳에 칡이 소나무를 감아 휘돌아 올라가고 있고 넓적한 잎사귀 사이에서 보이는 예쁜 칡꽃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이 콩 꽃처럼 보여서 신기하다 했는데 콩과의 덩굴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덩굴식물을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한다. 왜냐하면 일반 식물에서 느낄 수 없는 다양한 리듬감과 운동감을 많이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종이 위에 표현하고 채색하는 작업이 참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칡과 같은 덩굴식물은 숲 속의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고 그 힘이 대단해서 나무 표면을 변형 혹은 그 나무를 고사시키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내 마음은 '갈등'하게 되었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의지해서 잡고 커 나아가야만 하는 덩굴식물의 특성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 특성이 상대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잠시이고 꽃을 보면 모든 시름이 사라지게 된다. 칡꽃 역시 예쁜 색깔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강인함까지 느껴진다.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칡꽃을 언젠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려 볼 때가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진한 주홍색이 매력적인 둥근잎 유홍초, 보라색 화관을 쓴 듯한 엉겅퀴 꽃, 다양한 싸리꽃들, 그리고 알알이 보석 같은 산딸기들, 그리고 멋진 자리공 열매들이 숲 속 언저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며느리배꼽 열매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것 역시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사실 국명을 보고 그 식물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면 좋은데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일반 영명은 Asiatic tearthumb라고 하는 데서 '아하… 무슨 가시가 있나 보다.'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정말로 줄기를 보면 가시가 역방향으로 나 있어서 잘못 잡으면 손가락이 찔려서 잠시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열매는 자주 보았으나 며느리배꼽의 꽃을 확실하게 관찰해 보지 못했다. 이점이 참 아쉽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우연히 만난 노루발풀은 무더움 속에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과 같이 나에게 시원한 눈과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하는 조금의 여유를 안겨주었다. 이것은 여러해살이풀이라서 해마다 그곳을 지나치면서 올해도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해보았다. 그런데 어느 해 노루발풀이 가득 있던 곳이 파헤쳐져 있고 거의 상처 입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멧돼지가 그랬을까? 아니면 꽃이 이뻐서 집에 가져 갈려고 뿌리 채 누군가 캐어 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 누군가 소유 목적으로 가져갔다면 그 욕심이 너무 슬프게 여겨졌다.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강제 이주된 노루발풀이 제일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아마도 숲 속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제발 인간은 자연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반드시 개입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겠지만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닭의장풀                                                                        칡꽃                                 둥근잎 유홍초

          

산딸기                                                          자리공                                               며느리배꼽

                                                                    노루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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