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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데이런 2024 10km

젖은 솜을 이고 달리기

by 수메르인 Jan 31. 2025

우리는 권위에 약하다. 올림픽 데이런은 '국내 유일의 IOC 인증 마라톤대회'다.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다른 마라톤 대회와 뭐가 다른 지도. 참가해 보면 알겠지. 참, 오륜마크가 찍힌 기념티는 폼나보였다. 동아,  jTBC, 조선 등 3대 대회만 나가보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올림픽과 연결고리가 있는가? 일단 장소가 올림픽공원이다. 올림픽의 날은 6월 23일이지만 초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를 피하기 위해 대회를 매년 10월에 개최해 왔다. 하필 2024년에는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특별히' 올림픽의 날인 6월 23일로 앞당겼다. 즉, 초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에 뛰어야 한다는 뜻이다. 


코스가 상당히 난해하다. T자 모양의 조형물로 유명한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을 출발해 올림픽 파크텔과 성내 빗물 펌프장을 지난 다음 다시 올림픽공원으로 진입해 88 호수와 나 홀로 나무를 거쳐 소마 미술관 앞을 경유하면서 올림픽공원을 시계방향으로 반바퀴 돌았다가 성내천을 따라 한강 어귀까지 나갔다가 돌아 다시 평화의 광장으로 돌아온다. 


써놓고도 코스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지만 실제 뛰노라면 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분명 작년 대회는 올림픽 공원 외곽 도로를 돌아 뛰는 단순한 코스였는데 왜 이리 복잡해졌나. 올림픽공원 주변 공사 때문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PB*를 경신하려면 어떤 코스가 가장 이상적인가. 

(* Personal Best: 개인최고기록을 뜻하는 마라톤 용어)


첫째, 경사가 없는 평지(완만한 내리막은 오히려 좋다)

둘째, 가급적 곡선 주로가 없는 넓은 직선 주로

셋째, 온도와 습도가 너무 높거나 낮지 않을 것.(봄, 가을이 좋다) 차라리 조금 추울 땐 달리다 보면 열이 나서 괜찮지만, 더운 날씨는 최악이다. 


2024 올림픽 데이런은 정반대의 조건을 모두 갖췄다. 올림픽공원 내 산책로는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출발할 때부터 주로가 좁아져 병목구간이 이어졌다. 호수의 둘레를 따라 도는 구간은 자연스레 곡선이 됐다. 게다가 초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까지. 


느리게 뛸지언정 멈추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이번 대회에서 무너졌다. 첫 번째 오르막에서 멋모르고 뛰었다가 계속 숨이 찼다. 그 후로 오르막이 나오면 걸었다. 나중에는 탈진해서 평지에서도 이따금 걷다가 다시 뛰곤 했다. 


높은 습도 때문에 숨 쉬기가 답답했다. 대회 기념 티셔츠 원단이 꽤 두툼해서 열기 배출이 잘 되지 않았다. 소매도 걷어보고 배도 걷어봤지만 미봉책이었다. 음료 보급구간에서 생수가 담긴 컵을 가져다가 온몸에 뿌렸다. 


다리엔 무게추가 달린 느낌이었다. 정신은 일찌감치 나갔다. 왜 달려도 달려도 코스는 끝이 나지 않는 걸까. 같은 코스를 반복하는 곳이 있다 보니 두 번째 돌 때는 첫 번째가 전생같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복잡한 코스에서 길을 잃고 10Km 보다 더 달리는 선수, 두 번 도는 구간을 한 번만 돌아버린 선수가 속출했다. 


말이야 쉽지만 멈추지 않으면 완주는 가능하다. 최종 기록은 1시간 25분. 생각보다 기록이 나쁘지 않아 놀랐다. 디지털 인증서는 IOC 위원장과 대한체육회장 명의로 발급됐다. 완주 기념 메달도 오륜기 마크가 들어가 폼났다. 국내 유일의 IOC 인증 마라톤대회라서 뭐가 달랐는지, 완주한 지금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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