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형사님! 나 좀 봅시다.◆
날씨가 꽤 더운 여름이었다.
분지형인 대구의 지형상 여름엔 큰 인내심이 필요한 계절이다.
더운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 치킨 사업을 일어 킨 본고장답게 두류공원에서 치맥 축제가 벌어진다.
(코로나로 인하여 몇 년째 중단)
후원하는 업체와 그에 따른 업소들이 영업용 텐트를 치고 미군 부대의 군악대를 필두로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으로 절정을 이루면서 젊은 청춘들의 광란 축제가 며칠 열린다.
하지만, 두류공원을 관할하는 경찰서는 비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혼잡경비라고 해서 경찰청으로부터 필요한 경찰력을 지원받지만, 모든 것은 경찰서 책임이었다.
특히 형사들은 사복을 입고 치기배나 조폭들의 자리싸움 등을 예방하는데 주력하지만, 맥주를 먹고 취한 자들 관리로 사건, 사고를 막아야 하기에 매일 행사가 시작되기 전 전날 당직을 한 팀과 당직 팀을 제외하고 2~3개 팀씩 현장으로 진출한다.
치안을 책임지는 서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는데 병력을 지휘하고 있어 형사과장인 나 역시 형사들 지휘를 위하여 나갔다.
현장에 가면 형사들을 각 팀, 조별로 배치하고 나서 형사 1명을 데리고 현장을 점검 목적으로 다닌다.
다니다 보면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행사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치킨을 먹기도 한다.
본부석 맞은편 부스를 지나는데 옆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누군가
“김 형사님! 아니십니까? "라며 팔을 끌어당겼다.
“어! 누구요?”
“나 손흥락(가명) 아닙니까?”
“아니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하하하 참! 여기 축제한다고 해서 왔는데 당신 아직도 형사하고 있는교?”
20여년 전 내가 형사 조장할 때 구속시켰던 나쁜 인간이었다.
말투를 보니 술을 한잔 먹었는데 시비조로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옆에서 수행하던 박 형사가
“이 사람이! 당신 누군데 과장님한테 이래요?”
“어허! 박 형사 가만있어봐! 아니 손흥락 씨 오랜만이요. 요사이 어떻게 지내나요?”
“당신 덕분에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고 나왔지요. 왜요? 또 해볼란교?”
체격으로 봐서는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데 사마귀의 당랑거철(螳螂拒轍 : 제 분수도 모르면서 강적에게 반항함))자세였다.
취기가 있어 보이는데 다짜고짜로 시비조로 말을 해서 기분이 안 좋았다.
옛날 같으면 한소리 하면서 당장에 주먹이 올라갔겠지만 이제는 시절이 바뀌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 체면 차린다고 참았다.
“아니, 사람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손흥락 씨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뭐라고요?”
형사와 피의자의 사이였지만 나이가 나보다 몇살어렸다.
“어허! 이 사람이..”
“이 사람! 나는 당시 때문에 콩밥을 많이 먹었잖아.”
목소리가 커지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쳐다보더니 길 가던 사람까지 구경거리라 생각했는지 하나, 둘 모이는 것 같았다.
안전한 행사를 위하여 근무 나온 내가 도리어 분란 거리를 만드는 것 같아 손흥락을 달래기 시작했다.
“봐요. 손흥락 씨! 나는 당신하고 감정이 없고 세월도 많이 지났으니 우리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이야기할 게 뭐 있는데..”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관상학적으로 볼 때 범죄형(?)으로 그렇게 좋은 얼굴이 아니었다.
손흥락이도 이제 나이가 들어 50이 훌쩍 넘었으니 예전 같은 카리스마가 안 보였고 그저 주취자 중의 한 명으로 보였다.
손흥락의 팔을 끌다시피 하여 야외 음악당 잔디밭에 앉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봤다.
나에게 검거, 구속되어 7년이라는 중형을 받고 출소 후 포항에서 식당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대구로 와서 누나 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고 하며 딸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며 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성현들의 말을 전하며 착하게, 조용하게, 남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고 살라며 조곤조곤하게 다독이며 박 형사가 사 가지고 온 치킨에 맥주를 먹여 가면서 달래어 보냈다.
◆ 신부님의 부탁 ◆
매서운 참 바람이 귓전을 때리는 연말 바쁘게 지내는 중 마을금고 이사장으로 계신 황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김 형사님! 시간이 되신다면 금고로 차 한잔하러 오세요.”라는 연락이었다
“마을금고 이사장님이야 워낙 차분하고 정결한 분인데 웬일로 나를 오라고 할까?”라는 생각하고 파트너인 배 형사를 데리고 같이 평리동 마을금고에 갔다.
마을금고에 가서 이사장님을 찾아왔다고 하니 미리 연락을 해두었는지 이사장이 기다린다며 금고 안쪽 이사장실로 안내했다.
이사장실에 들어가니 성당 신부님이 앉아 계셔서 우리가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어 나가려고 하니 괜찮으니 와서 앉아 보라는 것이었다.
“이사장님 우리가 잘못 온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여기 앉으셔서 신부님 말씀을 들어 보라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우리는 신부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사제로서 차마 법에 호소할 수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배 형사랑 같이 자리에 앉아 신부님의 말씀을 듣기로 하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신부님은 근처 00 성당에서 주임신부로 봉직 중인데 착한 여신도 중 한 명이 봉사 활동을 하다가 곤란을 겪고 있는데 도저히 신부님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우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어려워도 성당차원에서 해결하려고 무던히 노력했건만 헤어 날 수가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신부님 말씀은 여신도 중 아가씨 한 명이 신부님 소개로 홀아버지 밑에서 사는 어린 초등학생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그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몹쓸 일을 당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실한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올랐다.
‘이런 X새끼..’ 라는 욕설이 나오는데 참았다.
"신부님! 지금 피해자는 어디 있습니까?”
“요사이 정신적으로 많이 다쳐서 상점 문을 닫고 00 피정의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저들이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나쁜 놈은 가만두면 안 되지요.”
신부님의 소개로 피해자를 호텔 커피숍에서 면담하게 되었다.
체격이 크지도 않고 얌전하고 착하게 생겼는데 내눈에는 예뻐보였다.
수사에 착수하기 전 기본적인 것을 파악한 다음, 반장에게 보고해서 승낙이 떨어져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것은 조사받으면서 하나씩 알아야 하지만 우선 간략하게 메모했다.
결혼할 나이가 지났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성당 일이나 신부님의 부탁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열정을 쏟아붓는 아가씨였다.
그의 이름은 진 수림(가명 : 당시 35세)이었고 시내에서 양품점(여성 기성복 판매)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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