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아홉 번째. 신대림동.
둘째 이모와 이모부가 이혼을 했다. 이모부는 우리 또래의 이종 사촌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혼자된 이모는 여인숙을 정리하고 위자료와 남은 돈으로 방이 세 개인 신대림동 연립 주택을 샀다. 엄마는 어찌하든 독립해서 나갈 테니 그때까지 작은 방 두 개를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이제 이모까지 여자 다섯이다. 이모는 안방에서 그리고 우리는 작은 방에 나누어 짐을 풀고 같이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갈 곳 없는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집에 왔다. 세 딸들은 잃어버린 행복이 너무 간절해 '해피'라고 이름 지으며 기뻐했지만, 예민한 이모는 언짢으셨다. 몸이 약하고 아픈 곳이 많은 이모는 혼자 집에서 티브이를 많이 보셨지만 남은 시간에는 늘 책을 읽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점점 여위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또래의 이종사촌, 이모의 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행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모부를 따라갔고, 이모도 그들의 선택에 한 점의 아쉬움도 없다고는 했지만, 딸들을 향한 그리움과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어쩌면 엉망이 된 삶이지만 딸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뒹구는 언니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쫄 땅 망한 엄마와 불쌍한 이모는 소소한 일로도 점점 더 자주 다투었다. 신대림동 연립주택 이모집에서 몸은 편해졌지만 가시방석 위에서 앉은 듯 마음이 많이 힘든 몇 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