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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페르시아 카펫과 공동 화장실

살던 집 시리즈. 열 번째 집. 신림동

by 조은미

나는 졸업 후 학교에 남아 조교로 일했고, 둘째는 고등학교 과학 교사가, 막내는 대학생이 되었다. 이모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우리의 존재가 이모의 외로움을 덜어주기는커녕 견디고 있는 우울과 슬픔이 더 깊어지도록 부채질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바람을 피해 먹고 잘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마음고생을 끝내고 싶었다.


힘겹게 찾은 곳은 회색건물의 큼직한 방 한 칸, 건물 바닥과 간차를 둔 이 시멘트 방은 난방 없이 장판만 얹고 문을 달은 곳이다. 방 벽 쪽 높은 곳의 작은 창으로는 밖에서는 안쪽이,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햇빛은 들어왔고, 복도 문과 방문 사이 후미진 곳에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석유스토브를 샀다.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 쌀을 씻어 밥도 하고, 라면도 끓이고 또 세수도 했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건물 출입문 옆 긴 복도 끝에 있었다. 낯선 이들과 줄을 서서 사용했는데 나는 늘 그 시간이 힘들었다. 복도에서는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혹여 만나는 일이 생기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모에게서 독립한 회색빛 공간 신림동에서 우리는 간절했던 해방감을 느꼈다.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었다.


이고 지고 다닌 물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늘 보아왔던 엄마의 오동나무 서랍장이 있다. 분리해야 만 옮길 수 있는 이 장은 벽 한 면을 차지한다. 큰 서랍과 작은 서랍, 긴 미닫이 서랍에 온갖 것을 넣기 좋은 장이다. 엄마는 아직도 팔지 못한 귀한 유품 하나를 꽁꽁 싸매어 그 속 어딘가에 깊숙이 넣어두었다.


오랜만에 생긴 우리 방을 여자 넷이 꾸몄다. 한쪽 벽에 그 오동나무 장을, 다른 한 면에 이불장을 놓았다. 그리고 페르시아 카펫을 꺼냈다. 외국 손님에게 선물 받아와 우리의 옛 집을 멋들어지게 장식했던 카펫의 네 귀퉁이에, "쾅, 쾅, 쾅" 대 못을 박았다. 카펫이 상하든 말든 지금 당장 이곳을 최대한 아름답게 장식해야 했다.


높은 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그쪽 벽을 비치면 반짝이는 금빛 연갈색의 바탕에 붉고 푸른색 옷을 입고 머리에는 무언가를 두른 먼 나라 사람이 낙타 위에 앉아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는 어디로 가는 중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가만히 방 안의 벽들을 둘러보면 필동 집, 계동 집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옛날에 더 옛날이 나는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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