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맏이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자 Sep 10. 2023

맏이 12. 귀국

     


현해탄의 파도는 그리 높지 않은 듯 배는 조용히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실을 꽉 메운 승객들은 대부분 잠을 자고 있었으나 귀국의 흥분 때문인지 잠 못 이루고 잡담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가 조선말을 쓰고 있었고 간혹 일본 말을 쓰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나는 이 무리 속에서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놀랐다. 그리고 불안을 느꼈다. 조선말을 알아듣기는 했으나 일본말에 익숙한 나는 말을 할 수 없어 앞으로의 걱정이 앞선 것이다.

 바다의 아침은 이르다. 날이 새자 누군가가 부산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나는 급히 갑판에 올라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육지의 모습이 그림과 같았다. 갑판을 메운 승객들은 점점 많아지고 대혼잡을 이루었다. 이윽고 부산항 부두에 정박하니 많은 환영객이 각기 손을 흔들고 있다. 완장을 찬 어떤 젊은 청년이 메가폰을 들고 갑판 위를 향하여 연설을 하고 있다. 무슨 소린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가끔 ‘우리는…, 우리’라고 하는 말을 자주 쓰고 있어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우리를 환영하는 연설이고, 우리 민족은 그간의 고통을 이겨내어 드디어 해방됐으니 그동안의 시련을 발판으로 신생 독립 조선을 위해 일해달라는 요지라고 하셨다.

 나는 보이는 것마다 신기했다. 일본과는 판이한 환경과 사람들의 모습. 떡장수, 엿장수들의 남루한 옷차림이 초라하게 보였다.

입국 절차는 DDT소독부터 시작되고 아침 식사는 부산의 모 단체에서 제공하는 주먹밥으로 마쳤다. 이리저리 뛰다시피 절차를 모두 마친 것이 오후 1시쯤이었다. 그날로 우리는 기차를 탔으나 출발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 자리에서 4시간은 기다렸다. 그 사이에도 귀국자는 자꾸만 늘고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와 같았다. 떠드는 소리는 정말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조선말을 할 줄 모르니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공중도덕이란 전혀 없는 묘한 모습들에 크게 실망했다.

 어머니는 물건 챙기랴 우리 형제 살피랴 이미 얼굴은 창백하고 세수도 못 한 그런 모습이 애처로웠으나 미지의 조선 땅이 어떤 곳인지 호기심이 더 앞서 있었다. 막냇동생 희양이는 철없이 웃으며 재롱 피우는 바람에 차중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여 다소나마 피로를 풀어주기도 했다.

몇 시간을 달렸는지 대전에서 내렸다. 청주로 가기 전에 아버지의 소식을 알기 위해 역 앞에 있는 아버지 친구 집에 들러(물어물어 찾은 후) 소식을 알아냈다. 어머니는 왠지 눈물만 흘리셨다. 그날은 그곳에서 쉬고 다음 날 아침 청주로 향했는데 교통이 불편한 시절인지라 몇 번이나 차를 갈아타고서야 겨우 청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짐을 달구지에 싣고 네 시간 후에 도착한 곳은 남이면 문동리에 자리 잡고 기다리신 아버지의 정착지였다.

 우리는 아버지를 만난 것이 기쁘기만 했으나 어머니는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를 원망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어머니로서는 젊은 시절 뼈를 깎는 옛날 추억이 되살아나 또다시 이런 곳에서 살자니 이 꼴이 뭔가 싶고 4형제는 모두 조선말을 못 하는 벙어리가 되어있으니 앞날이 캄캄했던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이전 03화 맏이 11. 미군부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