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한 수 바둑의 수를 점검하듯이..
"복기(復棋)하다."
한문의 뜻이 "다시 복", "바둑 기"이다. 말 그대로 바둑을 다시 두는 것이다. 이미 두었던 바둑을 그대로 다시 한 수 한 수 되짚어서 두는 것을 복기한다고 말한다. 복기는 왜 하는 것일까? 두었던 그 수를 다시 두면서 좋았던 점을 배우고, 잘못 두었거나 실수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이후에는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함이다. 또한 그렇게 검토하면서 새로운 바둑의 수나 방향을 배울 수 있는 것도 복기를 하는 이유이다. 바둑 전용 용어인 복기라는 말이 점점 대중화, 보편화가 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그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사용된다. 이전보다 더 발전된 기술 덕분에 복기하는 과정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에서는 그 의미가 더 깊다. 바둑은 놓은 돌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을 짚어볼 수 있지만 스포츠 경기는 그 경기를 다시 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의 발달로 영상을 통해서 자신의 동작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최근에는 스포츠 과학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입체적으로 수치화해서 자신의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기도 하다.
주식시장에서도 복기한다는 말은 사용된다. 주식시장의 흐름과 주기에 대해서 살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황과 세계적인 흐름과 여건, 정치상황들을 비추어서 이전과 비슷한 상황을 또 겪었을 때를 대비하여 복기하는 과정을 갖는다.
정치에서는 더 활발하게 사용된다. 선거에서 패배할 때에는 반드시 나오는 말이 "선거 패배 복기"라는 표현이다. 정책에서 실패하거나 시행착오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시 돌아보고 잘못된 원인을 찾아서 이후에는 같은 결과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심지어 게임도 다시 리플레이를 돌려보면서 복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 물론 복기하는 과정들이 다양하게 있다. "후회"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다. 다만 후회가 자책으로 이어지고 자신감이든 자존감이든 떨어지게 만든다면 그건 복기가 아니다. 그냥 후회일 뿐이다. 누군가와 다투어서 기분이 상하거나, 아니면 연인과 헤어지는 일을 경험했을 때에도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원망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감정에 대해서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기도 한다.
어떤 마음의 일들을 겪었든지 복기를 해보자. 처음부터 잘 되지 않겠지만 연습을 해보자. 내 경우에 아주 흔하게 복기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운전할 때다. 이제는 거의 그런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운전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격해지는 것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운전 중에 다른 차가 앞에서 급정거를 하거나 방향지시등이 없이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쌍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난폭운전을 하거나 보복운전을 하는 사람들과는 격렬하게 시비가 붙기도 했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서 멱살잡이를 했던 경험도 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 당시의 마음 상황도 부끄러웠던 것은 마찬가지다. 그 상황을 후회하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덜 성숙한 마음도 엄연하게 존재했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 씩씩거리면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주먹으로 한대 날렸어야 해.'라든지
'차에 오물이라도 투석해줬어야 속이 시원했을 텐데..' 같은 폭력적인 생각도 한 적이 있고, 대화할 때 좀 더 멋진 한방을 날렸어야 했다는 생각도 여러 번 해봤다. 하지만 결국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복기가 이루어진 생각은 바로 마지막 부분이다. 굳이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각자만의 생각과 상황과 형편들이 있었을 텐데 내 기준에서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여기면서 시비가 붙거나 언쟁이 발생한다. 그렇게 복기한 뒤에는 어떻게 바꾸었을까? 그저 급하게 끼어들거나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보면,
'화장실이 많이 급한가?'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장치를 만들었다. 그렇게 반복된 생각 전환은 결국엔 그런 차가 들이대도 경적도 울리지 않는 경지(?)까지 이르게 했다.
그런 작은 일에서도 복기가 필요하지만 큰 상처를 겪은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어렸을 적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이별을 했고, 아버지에겐 적지 않은 폭력에 시달렸고, 새어머니는 10번이나 바뀌었다. 난 배다른 형도 존재하고, 씨가 다른 동생도 존재한다.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내 집은 말 그대로 "콩가루"다. 내가 살아왔던 인생도 복기를 하면 좀 괜찮다. 나의 엄마는 나를 엿 먹이고 고생하고 필요 없어서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떠난 것이었고, 나의 아버지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1차원적인 사람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자식을 낳긴 했지만 자기 자신의 삶과 결정이 가장 중요했을 뿐 나에게 해를 끼치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었다. 배다른 형제이든 씨가 다른 형제이든 그들 나름대로의 속상함과 힘든 시간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다른 말로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내가 삶을 이끌어갈 때에 태생부터 불쌍하고 부족한 상태여서 좌절하면서 살 것인지, 반대로 그런 환경은 환경의 영역이고 나의 갈 길을 묵묵하게 갈 것인지 내가 결정할 일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그들(부모)의 인생의 시행착오가 굳이 나의 시행착오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복기를 하면서 바로 잡고 바꾸어야 할 최대 핵심은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 자녀에게 그런 일을 겪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갖지 않는 것.
이런 생각으로 정리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뭐든 얻어내려면 공을 들이는 것이 맞다. 제 아무리 손에 꼽히는 프로 선수라도 자신의 플레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반복해서 연습하고 몸에 익힌다. 복기를 하는 프로 바둑선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두었던 바둑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바둑의 수를 배우고 익히고 공부하면서 자신의 수를 만들어 간다. 그래야 비로소 복기의 효과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오랜 호흡의 복기도 필요하고, 또한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복기도 필요하다. 나는 오늘 또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마음과 생각들로 살아왔을까? 그리고 내일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