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의 레벨은 어느 정도인가?
최근 물가가 치솟았다. 커피 한 잔 5천 원, 김밥 한 줄 4천 원. 장 보러 가면 파 한 단에 놀라고, 계란 한 판에 한숨이 나온다. 거기에 금리 인상, 전세 대란까지. 뉴스를 켜면 온통 암울한 소식뿐이다.
특히 기름값은 우리 삶과 직결된다.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도,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는 라이더에게도, 아이 학원 보내는 부모에게도. 휘발유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이 있다.
"휘발유 리터당 100원 인상!"
이런 헤드라인이 뜨면 난리가 난다.
언론은 연일 특집을 편성하고, 도미노처럼 오를 물가를 예측한다.
SNS는 분노로 가득 차고, 모두가 한숨을 쉰다.
반대로 "휘발유 100원 인하"라는 뉴스는? 잠깐 언급되고 만다.
덕분에 싸질 물건들, 나아질 경제 상황을 다루는 기사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그래도 여전히 비싸다"는 논조가 이어진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100원 오르면 큰일 난 것처럼 행동한다.
불필요한 외출을 줄이고, 외식을 자제하고, 심지어 보일러 온도까지 낮춘다.
하지만 100원 내리면? 그저 "아, 다행이다" 정도. 특별히 기뻐하지도, 감사하지도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이라 부른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약 2배 더 크게 느낀다.
미세먼지도 똑같다.
"오늘 미세먼지 '매우 나쁨'!"
이런 날엔 정부를 비난하고, 중국을 원망하고, 세상이 끝난 듯 절망한다.
마스크 없이는 한 발짝도 못 나갈 것 같다.
그런데 "오늘 하늘 맑음"인 날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맑은 공기에 감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깨끗한 하늘이 원래 내 것이었던 양.
비 오는 날엔 기상청을 욕하지만, 맑은 날 기상청에 감사 인사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배달 음식이 늦으면 앱 리뷰에 분노의 글을 쓰지만, 빨리 오면 당연하게 여긴다.
와이파이가 끊기면 인터넷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지만, 365일 잘 되는 것엔 고마워하지 않는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가진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없는 것만 갈망한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숨 쉬는 공기.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 따뜻한 집. 먹을 수 있는 음식.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 걸을 수 있는 다리. 전쟁 없는 나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
투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밤에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
이 모든 게 당연한가?
긍정심리학자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의 연구에 따르면,
감사 일기를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도가 25% 높았다.
같은 현실, 다른 관점.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작가 G.K.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다.
"태양이 매일 뜬다고 지루해하지 말고, 매일 뜨기 때문에 경이로워해야 한다."
삶의 질은 연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는 동네로 정해지지 않는다.
차 브랜드로 매겨지지 않는다.
지옥은 땅속 깊은 곳에 있지 않다.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속에 있다.
천국도 하늘 높은 곳에 있지 않다.
일상의 기적을 발견하는 눈에 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미 어나더 레벨이다.
문제는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
오늘부터 '당연함'을 '다행함'으로 바꿔보자.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일상은 Another Level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