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프로에겐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
쿡방이 온 나라를 점령하던 때가 있었다.
최현석, 샘킴, 이연복, 백종원...
스타 셰프들이 화려한 칼질을 선보이고, 소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예술 같은 플레이팅을 완성하는 모습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요리학원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왜 대부분이 중도 포기했을까?
간단하다. 그들은 요리의 '결과'만 봤지, '과정'을 보지 못했다.
화려한 요리 시간은 전체의 20%도 안 된다. 나머지 80%는?
재료 손질, 주방 세팅,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처리. 새벽부터 시작되는 준비 작업,
뜨거운 주방에서의 중노동, 끝없는 청소와 정리. 이게 진짜 요리사의 일상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이를 '영향 편향(Impact Bias)'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나 상황의 긍정적인 면만 과대평가하고, 일상적인 고단함은 과소평가한다.
의학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멋지고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장면들.
하지만 현실은?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최소 11년의 고된 수련 과정.
36시간 연속 근무, 끝없는 당직, 생사가 걸린 압박감. 누군가는 의사를 '3D 직종'이라고까지 한다.
가장 만만하게 보는 영역은 아마 가수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착각이 퍼졌다.
실제로 "왜 나왔지?" 싶은 참가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정말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을까?
그렇다. 그만큼 쉬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아이돌들은 평균 5-7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친다.
하루 12시간 이상 연습, 끝없는 평가와 탈락의 공포, 데뷔 확률 1% 미만.
그마저도 데뷔 후 성공 확률은 더 낮다.
오디션에서 주목받은 이들도 사실 이미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사람들이다.
버스킹, 인디 활동, 보컬 트레이닝. 그 시간들이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을 뿐이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이를 '빙산의 일각 현상'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보는 성공은 빙산의 10% 일뿐, 90%의 노력과 실패는 수면 아래 감춰져 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TV에 나오지? 나도 저 정도는 하겠다."
정말 그럴까?
그 '별것 아닌' 아이돌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춤 연습을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다이어트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잠은 하루 4시간. 그런 생활을 5년 이상 해왔다.
사회학자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하루 3시간씩 10년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비교하고 평가한다.
"회사 다니기 쉽지. 그냥 앉아서 컴퓨터만 하면 되잖아."
"주부가 뭐가 힘들어? 집에만 있는데."
"공무원은 편하지. 정시 퇴근에 철밥통이잖아."
정말 그럴까?
회사원의 야근과 스트레스를, 주부의 24시간 육아 전쟁을,
공무원의 민원 응대 고충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심리학자 폴 블룸(Paul Bloom)은 "공감의 한계"를 지적한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늘 위험하다.
존중은 내가 예의 바른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보이지 않는 과정과 노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에 누군가를 평가하고 싶을 때, 잠시 멈춰보자.
"내가 그 사람의 하루를 살아본 적이 있는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시간을 알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90%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작가 이안 매큐언(Ian McEwan)은 말했다.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설의 시작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10%로 판단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90%를 상상해 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이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