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복기가 필요하다

후회를 성장으로 바꾸는 법

by 강훈

복기(復棋)하다.


'다시 복(復)', '바둑 기(棋)'.

이미 둔 바둑을 한 수 한 수 되짚어 다시 두는 것.

왜 그 수를 두었는지, 더 나은 수는 없었는지 살펴보며 다음을 준비한다.


이제는 바둑판을 넘어 어디서나 쓰인다.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동작을 분석하고, 주식 투자자들은 차트를 복기하며 패턴을 찾는다. 정치인들은 선거 패배를 복기하며 원인을 찾고,

게이머들은 리플레이를 보며 전략을 수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

물론 우리도 복기한다. '후회'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후회가 자책으로 이어지고, 자존감을 갉아먹는다면 그건 복기가 아니다.

그냥 후회일 뿐이다.


심리학자 수전 놀렌-혹세마(Susan Nolen-Hoeksema)는

'반추(Rumination)'와 '성찰(Reflection)'을 구분했다.

반추는 같은 생각을 계속 되씹으며 감정의 늪에 빠지는 것.

성찰은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 성장하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추가 아닌 성찰이다.


내 경우, 가장 자주 복기하는 순간은 운전할 때였다.

예전의 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화가 치밀었다. 끼어드는 차에 욕이 튀어나왔고,

급정거하는 차를 보면 경적을 울렸다.

한 번은 도로 한가운데서 차를 세우고 멱살잡이까지 했다.

끝나고 나면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그 후회도 미성숙했다.

'주먹 한 대 날렸어야 했는데.'

'더 센 한마디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진짜 복기를 시작하니 깨달았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각자의 사정이 있다. 급하게 끼어드는 사람은 정말 급한 일이 있을 수 있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초보 운전일 수도 있다.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니 분노가 생긴 것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Aaron Beck)은

"감정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라고 했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분노가 될 수도, 이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장치를 만들었다. 난폭운전하는 차를 보면 '화장실이 급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로.

우스꽝스럽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제는 끼어들기를 당해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더 큰 상처도 복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졌고,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으며,

새어머니가 10번이나 바뀌었다.

배다른 형도, 씨 다른 동생도 있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다.

오랜 시간 원망했다. 왜 나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하지만 복기를 하니 달라졌다. 엄마는 나를 버린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떠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해치려 한 게 아니라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형제들도 나름의 아픔을 겪었을 것이다.


정신분석가 앨리스 밀러(Alice Miller)는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했다.

부모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이 내 한계가 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복기의 핵심은 이거였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내 아이에게는 그런 아픔을 주지 않겠다. 그럼에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겠다.

그들의 시행착오가 내 시행착오일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마음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로 바둑기사가 수만 번의 복기를 통해 실력을 쌓듯, 마음의 복기도 반복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Pennebaker)의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글로 쓰며 복기한 사람들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크게 향상되었다.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경험을 재구성하며 의미를 찾는 과정이 치유를 가져온다.


하루하루의 복기도 중요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면,

왜 그랬을까?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면, 무엇이 그 감정을 불렀을까?


선승 틱낫한은 '진흙이 없으면 연꽃도 없다'라고 했다.

우리의 실수와 상처는 진흙과 같다. 복기를 통해 그 진흙에서 지혜라는 연꽃을 피워낼 수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감정과 상황도 제대로 복기하면 성장의 기회가 된다.


바둑에서 복기는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과정이다. 마음의 복기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지혜로, 실수를 성장으로, 아픔을 힘으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

'내일의 나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한 수 한 수, 마음을 복기하며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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