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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Sep 16. 2022

자존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만 꼬였어." 그런 건 없다. 마음이 꼬인 것일 뿐.

 인터넷에서 재미 삼아서 하는 심리테스트들이 제법 많다. 심지어 MBTI 검사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존감 테스트>가 눈에 띄었다.

 '자존감을 수치로 할 수 있나?'

 재미 삼아서 하는 것이니까 그냥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00점 만점에 23점. 내 자존감을 숫자로 접하는 순간 자존감은 더 떨어졌다. 그때가 내가 마흔이 되던 해였다. 


 난 자존감이 높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환경을 보자면 무조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럴만한 환경으로서는 충분했다. 


 일단 나는 어렸을 적에 화상을 입었다. 내 기억에도 없지만 화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다쳤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게 더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화상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른 글에 자세하게 다루었다.

<기억에도 없는 흉터의 비밀 - 1> https://brunch.co.kr/@kanghoon/21
<기억에도 없는 흉터의 비밀 -2> https://brunch.co.kr/@kanghoon/24


 8살이 되던 해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잦은 외도와 폭력을 이기지 못해 나갔다. 엄마가 있는 동안에는 아버지의 폭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다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에 아버지의 폭력과 횡포는 나에게도 현실로 다가왔고 거의 일상이었다. 자기 엄마에게도 폭력을 쓰는 그런 인간이었다.  


 난 새엄마가 10번 바뀌었다. 심지어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나와 나이 차이가 9살인 새엄마도 있었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친척들도 모두 배척했다. 아버지만 배척해도 좋지 않을 텐데 아무 잘못도 없는 나와 동생까지 도매급으로 취급을 당했다. 친척들이 그 정도니 그냥 주변의 남들은 오죽했을까. 한마디로 난 불쌍한 아이지만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거나 챙겨주고 싶은 그런 환경에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요즘은 어떨지 몰라도 예전에는 이혼이라는 것이 수치스럽고 숨겨야 하는 스펙이어서 친구들의 부모는 이런 말을 아예 대놓고 했다.  

 "쟤랑 놀지마" 


 아버지가 그렇게 잦은 외도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능력자라는 얘기도 우스개 소리로 한다. 그럴 만도 하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여자들도 만날 테니깐. 하지만 반전이 있다. 아버지는 전혀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 대신 그렇게 보일 수 있는 화려한 말발이 있었다. 그리고 곧 죽어도 멋쟁이였다. 항상 깔끔한 패션에 화려한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집에 쌀이 없어도 차는 끌고 다녔다. 물론 그 차의 유지비는 상대 여성의 몫이다. 유전적인 영향인지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한마디로 사기 치기 딱 좋은 조건들을 모두 장착한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기로 교도소에 갔다 오기도 했다. 그래서 난 항상 가난했다. 물론 지금도 부자는 아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학대, 엄마의 가출, 계속 바뀌는 새엄마라는 존재, 아버지의 무책임한 행동,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태도, 경제적인 가난까지, 난 그렇게 많은 악조건들을 가지고 자라났다. 그런 면에서 자존감 점수 23점은 사실 그렇게 낮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10점 이하가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얼마 전에 작은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와 정반대의 성품과 삶을 살아낸 사람이다. 혼자 돈 벌고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혼자 힘으로 외국에 유학까지 다녀와서 대학교수까지 된 사람이다. 말 그대로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 바로 작은 아버지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사이에 고모가 3명이 있었으니 나이 차이가 꽤 되었다. 나이 차이보다 삶의 차이와 격차가 더 컸다. 그래서인지 난 작은 아버지를 더 닮았다. 어쩌면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타공인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작은 아버지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가능했다 -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의 영향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은 작은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는 것은 당연했다.  

 작은 아버지와 아주 가끔 통화를 한다. 그리고 통화를 할 때마다 항상 같은 얘기를 하신다. 어렸을 적 나와 동생을 보면서 너무 많이 속상하고 많이 울었고, 지금도 그때의 나와 동생을 생각하면 참 많이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하신다. 그러면서 동시에 따라붙는 말은,

 "그래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커줘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어떤 동기부여나 위로를 받아서 잘 살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살아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렇게 안타까워하면서 마음속으로 응원했던 작은 아버지도 존재했고, 누군가는 불쌍하게 여겨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었던 누군가도 존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고아원에 날 보내려고 했지만 부모를 대신해서 부모 이상으로 지켜주고 키워준 할머니의 역할, 그것을 위한 사랑과 희생이 제일 컸을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듯 살아왔다. 그리고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내 자존감은 어떤지 한번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의 자존감 상태를 보면서 그렇게 충격을 받지도 않았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럴만했으니깐. 


 그렇다면 지금 나의 자존감은 어떨까? 이런 내 이야기를 가감 없이 글로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낮으면 할 수 없는 행동 아닌가? 마흔이 되면서 자존감 상태를 보고 나서 곧장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 노력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그 자존감 바닥의 아이에서 내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서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치고 올라온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딱 떨어지는 어떤 비결이나 원칙들을 말할 수 없다. 당연한 거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또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 자존감이 낮게 태어난 것일까? 그런 사람은 없다. 여러 가지 환경과 기질에 따라서 자존감이 낮은 것이다. 그리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이든 이후 만들어내는 환경이든 말이다. 자존감은 성향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몸을 단단하게 만들듯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마디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높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자존감이다. 애초에 뚱뚱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먹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서 비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많아져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도중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들을 붙잡고 그와 함께 가라앉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다시 회복하려면 매일매일 싸워내야 한다. 아니 매일이 아니라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치열함이 조금 덜 치열함으로, 조금 덜 치열함에서 버틸만한 것으로, 버틸만한 것에서 살아낼 만한 것으로 점점 나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과 내 삶이 가장 수치스러워서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래도 그냥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바뀌고, 좀 더 몇 걸음 내딛으면서 살아있는 것 자체뿐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내 인생만 꼬였어."

 그런 건 없다. 마음이 꼬인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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