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시, 나의 봄> 7화
복자는 오늘도 익숙하게 태블릿 전원을 켰다.
이제 삼각대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마이크 버튼을 누르는 손도 덜 떨렸다.
거실 한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은 복자는 조용히 화면을 바라봤다.
늘 자신을 비추던 그 화면이, 이제는 마치 하루를 함께 시작하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복자입니다.”
낮은 인사 한마디로 시작된 복자의 채널이, 어느덧 한 달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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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처음 올렸을 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회수 ‘3’, 댓글 ‘0’.
심지어 그 ‘3’도 복자 본인이 세 번 들어가서 만든 숫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아주 짧은 댓글 하나가 달렸다.
“어머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생각났어요. 감사합니다.”
그 문장을 복자는 열 번도 넘게 읽었다.
처음엔 단순히 놀라고,
그다음엔 고맙고,
그리고 나중엔 눈물이 났다.
‘내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거지…?’
복자는 그 댓글을 적어 작은 종이에 옮겨 썼고, 화장대 거울 옆에 붙여두었다.
“하루에 한 번은, 저 말 한마디를 떠올려보자.”
그게 어느덧 복자의 새로운 습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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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영상을 떠올렸고,
청소를 하다가도 “이건 이야기로 풀 수 있겠는데?” 하고 혼잣말을 했다.
이젠 거울 앞에서 말하는 연습도 했다.
“안녕하세요. 복자입니다.”
“오늘은요, 제가 예전에 남편이랑 나눴던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삶이라는 게, 참…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는 거래요.”
말하는 연습을 하다 웃기도 하고, 어쩔 땐 괜히 울컥해서 혼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 모든 게 복자에게는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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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트에서 생긴 일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 복자 님 맞죠?”
복자는 순간 당황했다.
머리가 하얘졌지만, 아주머니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그 유튜브요… 저 요즘 할머니 목소리 들으며 자요. 저희 엄마도 예전에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거든요.”
복자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아이고, 뭘요. 그냥 제 이야기 한 건데…”
“그냥 이야기라뇨. 덕분에 요즘 하루가 덜 외로워요. 정말 감사해요.”
그 말에 복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대신 깊게 인사를 건넸다.
말이란 게, 누군가의 하루를 이렇게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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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저녁 딸에게 전화가 왔다.
서로의 안부를 대면대면 이야기하다가 딸이 말했다.
“엄마… 영상, 봤어.”
복자는 순간 놀라
“아! 그랬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격양되며, 그리고 주눅 들어 있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복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지훈이가 보여주더라.”
그 말 한마디가 복자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설명도, 칭찬도, 사과도 없었지만
“봤어”라는 말 안에는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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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통화가 끝난 뒤, 복자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통화 버튼이 꺼졌지만, 그녀의 귀엔 여전히 딸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했다.
“엄마,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이제 버스에서 내려. 장 보러 가야 해.”
아쉬움 반, 이해 반.
그리고 조금은, 오래된 습관처럼 밀려드는 외로움.
복자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푸르스름하게 물든 저녁빛이 유리창에 가득 번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시간을 되돌려 받았는데도,
이런 순간이 다시 오네…”
혼잣말처럼 중언이다가, 문득 거울 앞에 다가섰다.
낯선 얼굴 같기도, 익숙한 얼굴 같기도 한 젊은 복자가 그곳에 있었다.
복자는 거울 속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의 나는…
그날로 돌아오기 전에
무얼 그렇게 놓치고 살았을까…”
거울 너머의 자신이 대답이라도 해줄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눈을 감으면
또다시 사라질지도 몰라서… 무서웠지..
그래서 더, 하루하루를 놓치면 안 되겠지.”
복자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작은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일기장을 펼쳐두었다.
어느새, 남편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너는, 후회하지 않을 용기를 내고 있니?’
복자는 끄덕였다.
“응. 오늘 하루는… 놓치지 않았어.”
그녀의 속눈썹에 잔잔한 결심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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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복자는 일기장을 펼쳤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당신이 당신을 바라보면 돼.’
남편이 남겼던 문장이 페이지 한가운데에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복자는 카메라를 켰다.
화면이 천천히 밝아졌고, 그녀의 얼굴을 담기 시작했다.
“오늘은요… 제 혼잣말이, 누군가에게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었으면 해요.”
“그게 바로 제가 이 봄을 다시 살고 있는 이유예요.”
복자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맺었다.
그리고 천천히 카메라를 껐다.
화면이 어두워지자 방 안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 고요가 따뜻했다.
삶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