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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Jul 17. 2024

재의 고통 EP. 02

석훈을 처음 본 곳은 J의 개인전 뒤풀이에서였다.

야근을 하던 와중에 몇 통의 부재전화를 발견하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빨리 오지 않으면 몇 년간 원망하겠다는 투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인사동의 전통주점에는 꽤 많은 무리가 술을 마시고 있었고 J는 벌겋게 오른 얼굴로 사람들과 요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교적 한적해 보이는 구석 쪽 테이블로 향했다. 빈자리에 있는 의자를 잡아끌며 옆에 있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곤 무심하게 얼굴을 돌렸다. 서늘한 눈매 언저리에 은테 안경을 걸치고 유난히 긴 손가락과 마른 발목을 가진 남자였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노년의 시인이 앉아있었다. 맹렬한 비판을 하고 있는 시인에게 남자는 예의 바르고 성실한 대답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왜인지 시인의 언성은 높아져갔다.

상기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변함없이 차분한 남자의 태도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들이켰다. 숨을 내뱉자 강한 알콜향이 코끝을 스쳤다. 묵직한 유기젓가락을 들어 올려 육회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질긴 날고기를 씹으며 시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김 감독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시인이 소리치듯 쉬지 않고 말했다.

“애인이나 만들려고 영화 찍는 버러지 같은 인간.”

남자는 노기를 여유롭게 받아내고 있었다. 친절과 아량보다는 정반대의 무엇. 정중함과 교만함, 냉소 속에 은밀히 느껴지는 공격성. 목적을 알 수 없는 야비함마저 느껴지는 교묘한 태도. 하찮은 곤충을 관찰이라도 하는 양 시인의 화가 지쳐갈 무렵 미끼를 던지고 불씨를 지펴 반응을 지켜보는 모양새였다.

부산스럽게 자리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던 청년이 남자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자 고성이 꽂히던 대화는 잘라낸 것처럼 중지되었다. 기묘한 분위기의 흐름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시인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간이 늦었다며 술집을 나갔다. 단정한 미소로 시인에게 인사를 한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것이 내가 가진 석훈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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