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머리가 욱신거린다.
나는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손이 뒤로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이건 정말 예기치 못한 사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묶여 있지 않았다.
저놈들은 테러범 역할로 고용된 어설픈 얼치기 배우보다 못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렇게 소리쳤다.
"깨어났어!"
일행들이 모여들었다. 민선은 겁먹은 표정이다. 그리고 손에 전기 충격기를 쥐고 있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남자 세 명과 오지에서 동고동락하는데 안전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기철이 흥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체가 뭐야? 큰스님도 한패야?"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정신을 잃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고 밖에 큰스님은 도대체 뭐 하고 있단 말인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진절머리가 난다.
잠시 생각에 빠졌을 때였다.
공습이 진정되었나 싶었더니 한바탕 뇌성벽력이 쏟아졌다.
사방에 메아리치는 비명들.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죽기 싫었다.
도망가는 학생들을 향해 악을 썼지만 도와줄 리가 없었다.
10여 분이 흐르고(어쩌면 더 지났을 수도 있겠다) 다시 잠잠해졌다.
책상 밑에서 학생들이 기어 나왔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어서 뜨자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기철은 나를 보며 말이 없다.
끝내 그도 수긍하고 사무실을 나서던 찰나였다.
큰스님. 혜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격을 피해 지하로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묶여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불같이 고함을 내질렀다.
노인네가 그 연배에 기백이 대단했다.
학생들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기철이 삿대질하며 말했다.
"저자가! 실종된 우리 형의 행세를 하고 다녔어요! 스님도 알고 계셨어요?"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도선은 저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과학자 출신입니다."
종전과 반대로 침착하게 설명했다. 누가 중 아니랄까 봐 두 손까지 모아 붙이고 있었다.
기철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제 형이 행방불명되고 사방으로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저자가 형 신분을 도용하고 있어요. 저자가 과학자라니 택도 없습니다. 레슬링 선수처럼 귀가 뭉개져 있잖아요! 스님은 저자의 정체를 알고 계시기나 한 겁니까?"
큰스님은 더 이상 해명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달리하며 딱딱하게 말했다.
"이보게 학생,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관심 없네."
그러고 천장에 66식 총탄을 박아 넣었다.
"모두 바닥에 엎드려."
침착한 말투였다. 말 그대로 눈 하나 깜짝 않고 일어난 일이다.
허리춤에 권총을 다시 꽂아 넣고 느릿느릿 사무실 책상 서랍을 뒤적이더니, 커터 칼을 꺼내 나의 결박을 끊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