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잣대.
"스.. 스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기철이 뭐라도 씹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연구소에 있었어요."
나는 카이스트에서 이공계 박사 과정을 밟았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암산이 조금도 어렵지 않았고, 사칙연산 때문에 고생하는 반 아이들을 보면서 왜 이런 걸 못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2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내가 소위 말하는 특별한 아이임을 알게 되었다. 수 개념이 남다르다는 점이 선생님 눈에 띈 게 시발점이었다.
이후 선생님은 나의 부모님을 설득해 방과 후, 그러니까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과학고에서 영재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주선했다.
영재 교육은 초등학교에서나 과학고에서나 환영받을 일이었다. 그런 만큼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나도 학업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재미있는 퍼즐을 원하는 만큼 마음껏 풀 수 있었고,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기자재도 많아서 흥미로웠다.
주말 내내 교육원을 가는 월, 화, 수만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중학교는 1학년만 마치고 아예 과학고에 조기 입학했다.
이 역시 온당한 처사였다. 그 무렵 나는 친구 한 명 없이 늘 집단에서 떨어져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책만 읽었고, 학교 밖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카이스트 박사 과정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졸업 후 진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련히 대학교수나 정부기관의 연구소로 가겠거니 생각했다.
공부는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다만 청춘사업은 정반대였다.
그 당시 관심이 가던 상대가 있었는데 연구실 경비 처리 문제로 알고 지내던 교직원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아 무슨 일 있느냐 물었더니, 최근에 새로 업무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일이라는 것이 ‘혁신인재성장사업단’이라는 기묘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나는 황당무계한 이름을 듣고 참으로 곤란한 일을 맡게 되어 딱하다고 생각했다. 어떻든 그녀가 이어 말하길 인재개발을 지원하는 국책사업인데 도무지 시범단 정원을 채우지 못해 난처하다며 하소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나에게 부탁하려던 참이라면서 도움을 청했다.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환심을 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리하여 나는 캘리그래피부터 가죽공예, 올레길 종주 등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활동을 나랏돈으로 즐겼다. 아니, 탕진했다. 무엇이든 비싸고 최고급으로만 제공되었다. 숙박은 특급호텔, 석식은 고급 정찬요리를 대접 받았다. 사치를 부리는 것과 혁신 인재와의 상관관계를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팀장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검증된 창의력 증진 활동이라면서 앞으로 우리의 연구 실적도 더 향상될 거라고 장담하듯 말했다. 나는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았다. 아무튼, 내가 아는 것은 나라에 돈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 전부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열풍이었다.
팀장은 우리를 템플스테이로 이끌었다. 동료들은 지겨워 몸서리쳤지만, 나는 아늑하고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 없었다.
명상을 하면 더 가벼워졌고 숲을 걸으면 뭔가 채워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산을 내려가기 싫었다. 그리고 논문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세의 미련을 버리고 출가를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필요하지 않았다.
10년 전의 일이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