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잘 모릅니다. 클로버 이야기만 나오면 흔히 입 밖으로 나오는 말입니다. 나야 말이 부족한 사람이니 그렇지만 마음 급한 사람들은 자신의 앎을 과시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이어 나폴레옹을 들썩입니다.
“말이야, 나폴레옹이 월터루 전쟁터에서 어느 날 클로버가 널려있는 들판을 지나게 되었어. 우연히 발밑에 있는 네 잎 클로버를 보게 된 나폴레옹은 신기하다는 마음에 그 잎을 따려고 머리를 숙였다지. 그때였지 뭐야, ‘슝’하고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갔어. 네 잎 클로버가 목숨을 구해준 거지.”
모르는 척, 처음 들어본 이야기인 양 눈을 반짝이며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와아!”
말 그대로라면 나는 행운이 무더기로 쏟아진 하루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한두 시간 사이입니다. 공원의 수변을 걷다가 무심코 클로버에 눈이 쏠렸습니다. 눈동자를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네 잎이 눈에 반짝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이야 생각지 못한 일입니다. 천천히 발자국을 옮깁니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심스레 움직였습니다. 하나, 둘, 셋……, 열하나, 열둘. 자그마치 열두 줄기나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찾았다는 마음에 기분이 들떴지만, 점차 평정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렸을 때는 클로버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토끼풀이 클로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자랐던 시골에도 클로버는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토끼풀이라고 불렀는지 모릅니다. 내가 짐작을 해보니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클로버는 토끼가 좋아하는 풀입니다. 풀이 연해서인지 맛이 좋아서인지는 몰라도 분명 잘 먹습니다.
어느 날, 삼촌이 말했습니다.
“토끼풀 뜯어다 주어야지, 굶겨 죽이겠다. 어제와 그저께는 내가 풀을 뜯어다 주었다.”
한때 토끼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집안 식구들을 조른 일이 있습니다. 내가 토끼풀 당번을 하겠다고 조건을 앞세웠습니다. 귀여운 마음에 한동안 부지런히 풀을 뜯어다 주었습니다. 한 가지 놀이도 생겼습니다. 친구들이나 동생과 함께 가면 토끼풀꽃을 따서 반지나 팔찌, 화환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지루해지기가 쉽습니다. 어느새 토끼풀 뜯기가 시들해졌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지나갑니다. 그때는 네 잎 클로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네 잎 클로버가 있다는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주위 사람들한테서 들어본 일이 없고 내가 발견해 본 것도 아닙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펜팔이 유행했습니다. 학생 잡지에서 주소를 알아 남쪽 바닷가에 사는 여학생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답장받았는데 편지지 위에 잘 정돈된 네 잎 클로버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부른다지. 서로의 우정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어.”
내 편지글에 호감이 갔는지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긍정적인 답을 얻고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행복에 비해 행운이라는 것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두 해 정도 서신을 주고받다 나중에 다시 만남을 이어가자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네 잎 클로버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많다는 생각에 흥미를 끄는 사람한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남의 눈에 띄게 클로버를 흔들며 집으로 행했습니다. 행운을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내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해서일까요. 내 곁을 지나는 사람들도 내 손에는 무관심입니다.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 조심스레 펼치고 두꺼운 책갈피에 끼웠습니다.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불쑥 풀을 내밀기는 왠지 쑥스럽습니다.
언젠가는 잘 쓰일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삼십여 년 전 지금처럼 네 잎 클로버를 많이 발견해 모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신기해하는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들에게 나눠줬던 모양입니다. 인기가 좋았다며 뜯은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장소의 대부분은 그들이 자라기에 좋은 않은 곳이었습니다. 살기 위한 투쟁이었는지 튀고 싶은 생각인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돌연변이입니다. 네 잎 클로버를 이야기했는데 때에 따라서는 다섯 잎, 여섯 잎, 일곱 잎도 있다고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 보니 모습이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공해를 비롯한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의 소나무는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름은 눈에 잘 뜨이게 마련입니다. 클로버의 네 잎과 세 잎은 그들의 삶에 뭐 대단한 일입니까. 사람들이 지어내고 만들어 낸 이야기의 결과물입니다. 행운과 행복은 무엇입니까. 나는 다행이라는 글자를 선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네 잎 클로버는 내 곁은 떠날 것입니다. 내게는 꽃반지, 꽃팔찌, 꽃 화환의 추억이 더 아름답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곧 질리게 됩니다. 맛이 없는 음식은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의 식탁도 다른 날과 별다름이 없습니다. 여유 있는 시간, 천천히 수저를 들었습니다. 김치처럼 그냥 세 잎 클로버로 만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