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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 Mar 25. 2022

그리고 조이

1


주황색 뺨과 빨간 부리, 연둣빛 꼬리 깃털이 아주 귀여운, 검은 눈의 노란 앵무새였다. 조이. 나는 조이를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얹고는, 초록 잎들이 무성한 풀숲으로 자꾸만 들어가곤 했다. 잠시 산들바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조이. 나의 조이가 없어진 건.



2


아주 똑똑한 노란 앵무새였다. 조이. 조이는.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조이는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인간의 말을 흉내 치레내는 것뿐이 할 줄로는 없는 여느 다른 숨 들과는 달랐다. 조이는 단 한 번도 내 말을 따라한 적이 없으면서, 아주 잘 했다. 말을.



3


조이가 보내는 화답의 언어는, 주로 내 말에 관한 해결책이었다. 내 말이란 것은, 주로 고민 투성이였다. 나는 지나치는 바람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늘, 모든 것은, 금방 끝나갔다. 정말로, 금방 끝나갔다. 그저 불어왔다가 스쳐지날 바람이라서.



4


조이는 그런 내 눈빛을 열심히 좇는 듯했다. "당신, 부는 바람을 사랑하는군" 하는, 똘망한 눈빛을 내게 보내면서 말야.



5


내 말이란 것은 주로 고민 투성이여서, 해결을 필요로 했다. 아주 많은. 그리고 조이. 조이는 내 오른 어깨에 살포시 무게를 얹는 안정감과 꼬옥 같은 주파수로, 내 오른쪽 귓가에 다정한 말을 늘 속삭이었다. 그의 언어는 꼭 나에게, 그의 몸뚱이의 무게만큼의 안정감을 주곤 했다.



6


2013년, 3월, 하고도, 27일이었지. 그날은. 어른이 되고 보낸 첫 해를 갈무리하고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 봄이었다. 어김없이 풀숲으로 들어갔다. 오후에 날이 좋아서, 조이와 함께, 어김없이. 나는.


바람은 불어왔고, 나는 잠시 조이가 마음껏 날아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것은 분명, 내친 것은 아니라고, 믿고싶었던 거지. 나는 그날의 산들바람이 내 어깨를 간질이는 느낌이 좋아서, 조이의 무게는 잠시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래도 괜찮았던 거지. 집에 돌아가는 이 길에 어김없이 다시 나와 함께할 테니. 나의 조이.



7


숙명은 나를 어겼다. 내가 어긴 것인가. 숙명을. 조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산들바람이 날라 갔는가, 구름이 실어갔는가, 나의 조이. 내 귓가에는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조이의 목소리로 그리는 말들. 그것은 주로 내 말에 관한 해결책이었다. "우리, 이렇게 생각해볼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내 양쪽 귀를 모두 게걸스럽게 먹어치워도 좋으니까 그 똑부러지는 부리로 또 다시, 말이란 말은 모조리 속삭여주기를. 얼마나 하염없이 바랐는지. 누가 알까. 조이는, 알까.



8


나는 매일매일, 내 방 침대의 머리맡 창가에 놓인 작은 연갈색의 나무 탁상 위에, 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새 봉투에 담아,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 어떤 날은 조이에 대한 사랑이었고, 또, 그리움이었고. 또 원망이었고, 그 원망이란 것은 왔다. 조이가 없는 나의 세상으로부터.



9


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매일매일. 그날의 해가 저물 때까지, 온종일 열어둔 창가에 먼지 하나 내려앉지 않는 듯, 서늘하게 창틀이 허기가 지면은, 그제야 편지가 가련해 보였다.


혹시 모르지.


조이가 읽어줄지 모른다는 간절한 바람은 희망의 형태로 향기로웠고, 밤이 되면은 빼빼 마른 시든 모습으로 금세 바뀌었다. 창문을 닫은 적 없었다. 일교차로 밤공기가 차도,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밤새 내 편지를 집어갈지도. 혹시 모르지. 조이.



10


아침에 해가 뜨면 나는 전날 쓴 그 편지를 무참히 구겨서, 정말, 언제 그렇게 정성스럽게 잉크를 눌러 글자들을 배열했는지도 잊을 만치 무참히, 구겨서,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서랍이 가득 차면, 한번씩 열어서 깨끗이 비웠다. 서랍을 비울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만큼 나날이 흘렀다는 게.



11


이백오십구번의 글쓰기가 지난 후였다. 조이가 돌아온 것은. 나는 조이에게 아무것도 물을 기력이 없어서, 그저 양손으로 꼬옥 그러쥘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왜소한 조이를 두 손을 모아, 안아주었다. 그리고 도구를 챙겨,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좀, 했다. 내 오른쪽 뺨을 타고 굵은 적색 핏방울이 흘러내렸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귀가 없으면은 들을 수 없겠지.


그 속삭임을.



12


조이는 오늘도 나에게 말을 해주겠지. 결코 나를 복제하지 않는, 새로운 결의 언어를 나에게 불어넣으려 해주겠지. 하지만 나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오른 어깨를 가볍게 짓누르는 그 한줌의 무게감만은, 나를 안정시키고 있으니. 그거면 됐어.


너의 귓말을 너무, 너무, 사랑했던 나를 이젠 용서해.

지나간 시간과 그 모든 덮여버린 날들. 그리고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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