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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Dec 27. 2023

머리카락 보인다

10

5개월 전)


허름한 선술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얼굴에 취기가 오른 그는, 케이스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고, 라이터를 찾아 주머니를 더듬거다. 벨소리가 울리자 라이터를 찾던 손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포장케이스에 집어넣었.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먹었어요.

엄마는?

제발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보고 있. 이제..."


불쑥 나타난 행 어깨가 부딪힌 남자 통화하던 스마트폰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행인을 쳐다봤지만, 그 사람은 사과의 말도 없이 힐끗 쳐다보곤 지나쳐 갔다. 액정이 깨진 것을 확인한 남자가 기분이 상했는지 행인 앞을 막아섰다.


"이봐,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모자 그늘에 가려져 상대의 표정 볼 수 없었지, 사람은 조금의 미안함도 없었던 것 같다. 막아 선 자신을 밀치고 가버리는 행인에게서 무시당하는 기분 추가로 떠안아야 했기에, 남자는 멀어져 가는  사람 뒤통수를 향해 짜증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뭐 저런 경우 없는 새끼가 다 있어! 재수 없게."


그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반대의 경우가 생긴다고 해도 남자는 물러설 생각 없었다.


"준호야! 무슨 일이야? 준호야!"


스마트폰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호 화가 났지만, 상대하고 싶지 않은 류의 인간이었기에, 걱정하고 있 엄마를 생각해,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인적이 없는 골목을 지날 때쯤, 누군가 뒤에서 전화통화하는 준호의 어깨를 거칠잡아 세웠다. 뒤를 돌아본 준호는 순간 오싹한 기운 느껴졌다. 어깨 부딪혔던 남자였다. 가로등 불빛이 떨어지며 차갑게 반사되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대처할 틈도 없이,  남자의 손이 빠르게 준호 가슴을 파고들었고, 순간 느껴지는 날카로운 두려움에 준호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남자 모자가 벗겨지며 허공을 맴돌았고, 얼굴이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났다. 그는 민서사건 용의자 기철이었다. 기철은 표정 없는 얼굴로 준호의 가슴을 찌르고 또 찔렀다. 준호가 쓰러져 저항을 하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기철은 말없이 하던 짓을 계속했다. 준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옆에 떨어져 있는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에서는 아들을 찾는 엄마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


기철의 이번 범행은 매우 우발적이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는 습성을 보였던 그가, 계획 없이 본성을 드러낸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더구나 거리에서 시비로 사람을 죽인 다는 것은 매우 이레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기철의 범행은 연령이나 성별에 국한된 특이점이 없었다. 오로지 사냥을 위해 범행 대상을 찾아 거리를 헤맸고, 눈에 띄는 사냥감을 찾게 되면 몰래 따라가 그의 모든 것을 알아내 범행 방법을 계획했다. 

그는 돈이나 원한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가해 흔적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범행 방법 또한 난해했다. 그는 절정의 순간을 위해, 기다릴 줄 아는 노련한 살인마였다. 언젠가 자신이 잡힐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최대한 지금의 생활을 오래 즐기려 했고, 드러나지 않는 완벽한 범행만을 계획했다. 그래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벌인 이번 범행, 모든 것을 망게 될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


기철의 범행 장면은 방범카메라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고, 그의 행적 경찰에 노출되기에 이른다. 민서 사건의 용의자였던 그가 다른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세상이 온통 살인범 기철 이야기로 또다시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도시에 갇혀버리게 된 기철은 점점 조여 오는 경찰 수사망에서 퇴로를 찾지 못했다.



1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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