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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러닝은 이렇게 끝나나

오토바이 바퀴에 발목이 끼었다

by Dahi

러닝을 한 날 아침에는 아침을 먹기로 했었다.

가끔 러닝을 했고, 가끔은 러닝없이 아침을 먹은 날도 있었다.

내가 달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뛰지 못하게될 때까지는.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갔다.

도착한지 이틀째되던 날이었던가, 저녁에 샐러드를 사서 집으로 걸어가던 중

뒤에서 오토바이가 나를 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발목은 오토바이의 앞 바퀴와 몸체의 사이에 비틀어져서 끼어있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내가 걷던 길은 메인 도로라기엔 무색할 만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길이었고,

나는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차를 마주하며 걷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오토바이가 나를 쳤다고?


멍하니 누워져있는 오토바이와 그 사이에 낀 나의 발을 바라보며

잠시 꿈인줄 알았다.

이게 현실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나의 힘으로는 쓰러져있는 오토바이를 세울 수 없었다.

바로 앞에 식당에 있던 미국인 남자가 다가와서 오토바이의 앞 바퀴를 돌려 내 발을 꺼내줬다.

그리고는 곧 그 오토바이의 주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괜찮냐고 물었다.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니가 무슨일을 냈는지 알고 있다면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겠지만,

그는 어떤 것도 변상하고 싶지 않았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나에게서 괜찮은 것 같아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이는 본인의 입술 위에 빨갛게 난 상처를 보여주며 나도 여기 다쳤어.

이 말을 남기고 오토바이를 끌고 사라져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사실 그에게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어.

내 발목이 어찌되었건 간에 일단 미안하다고 하는게 먼저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그건 사실 정말 찰나였던 것 같다.

그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기 전에 발목의 통증이 조금씩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를 도와준 미국인 남자는 이쪽으로 와서 잠시 쉬었다 가라고 했고,

식당 직원들은 빨간약과 얼음을 가져다 주며 나를 걱정했다.

나는 얼른 이 자리르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만 더 쉬다가 가라고 했고,

미국인 남자는 나에게 진토닉을 한잔 건네며 이걸 마시며 진정하라고 했다.


이 얼마나 따뜻한 세상인가, 나는 발목을 잃었지만 친구들을 얻었다.

그 이후로 두시간 가량 내가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잊은채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고마운 마음은 둘째 치더라도 말이 정말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러다 원래 저녁 때 만나기로 한 나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어디냐고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여기에 한참동안 앉아있다고 말했다

아마 내 친구는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어떻게 사고가 났냐고해서

내 발이 바퀴에 끼었다고 했다

사실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그 몇시간의 수다를 통해 모든 것을 통념해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보다 더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내 친구가 달려왔다

그렇게 나의 인도네시아 한달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일정은 그대로 끝났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발목이 붙어있는 나는 다행이었고,

그 와중에 나를 도와준 친구들을 만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계획없이 여행하던 내가 계획을 세우며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역시 하늘은, 내가 계획을 세우는 꼴을 못 보는가 보다라며 나의 인도네시아 한달살기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러닝일기도 한동안 쉬어간다.


다시 뛰게되는 그 아침, 다시 찾아올게요!

다시 뛸 수 있기를, 다시 기쁜 아침을 먹을 수 있기를!

모두 뛸 수 있음에, 숨이 찰 수 있음에 감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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