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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기 Oct 22. 2023

차방茶房을 만들었습니다. 집에 방이 두 칸 뿐이지만.

  늘 없이 살기는 했지만, 운은 좋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째 제대로 일을 못했지만,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왔습니다.  

  대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부모님 집에서 완전히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봉천동에 있는 다세대주택에서 살았습니다. 5평 남짓의 작은 원룸이었지만,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논문을 마칠 무렵에 성북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성북동의 집은 셰어하우스였습니다. 작은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었습니다. 여러 명이 같이 사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작은 방에서 사는 것보다야 생활수준이 나았습니다. 그렇게 성북동의 셰어하우스에서 6년 여를 살다가, 노원구 상계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저를 떠밀었습니다. 당시 살고 있던 성북동 집은 북한산 기슭에 걸쳐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시와 성북구에서 행하는 도시공원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사업이 성북동의 집이 편입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북동의 집에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약간의 주거이전비와 이사비를 받고 그 집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성북동에서 계속 살고 싶었지만, 수중에 가진 돈만으로 성북동에 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집주인에 의해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서울시와 성북구에 의해서 쫓겨나나 것이었기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운영하는 임대아파트에 철거민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혼자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성북동의 집은 작은 마당이 딸린 25평의 단독주택이었습니다. 거실도 있고, 부엌도 꽤 넓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배정된 임대아파트는 전용면적 10평의 방 두 칸 짜리 아파트였습니다. 그 평수가 1인 가구에게 정해진 평수라고 했습니다. 더 넓은 평수를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봉천동의 원룸보다야 넓었지만, 성북동 집 보다는 한참 작은 평수였습니다.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후 제가 들어갈 집을 보러 다녀왔던 적이 있습니다. 집을 보러 다녀온 후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되고 낡은 아파트였고, 집의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나빴기 때문이었습니다. 층고가 낮았고, 알 수 없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했습니다. 전용면적 10평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였지만, 그렇다고 충분해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입주 청소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했습니다. 정돈된 후에 다시 보니, 처음에 집을 보러 왔을 때보다야 기분이 한결 나았습니다. 어쨌든 한동안 정을 붙이고 살아야만 하는 집이었습니다. 불평을 하기보다, 주어진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편이 저에게 이로웠습니다.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사고, 식탁과 의자를 샀습니다. 그렇게 저의 취향에 맞는 가전제품과 가구 등을 사면서 집을 꾸몄습니다. 공간을 꾸미면서 작은 방 하나를 차방(茶房)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방 두 칸의 작은 집이었지만, 방 하나를 차를 마시는 전용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용면적 10평의 임대아파트가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것이 전용면적 10평의 임대아파트라면,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저의 행복을 위해서 저는 방 한 칸을 제가 좋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습니다. 

  차방을 만드는 것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습니다. 성북동의 집에서는 제 전용 공간은 침실 하나뿐이었습니다. 차는 부엌 식탁에서 마셨습니다. 부엌 식탁은 밥을 먹는 공간이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불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엌에 남아 있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서 차를 마시는 때가 많았습니다. 때때로는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가 밥을 먹는 중에 차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를 마시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집중하면서 차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텅 빈 공간을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장식장을 방 한 쪽에 두고, 다기들을 옮겼습니다. 주문제작으로 가구를 만드는 곳을 찾아가서 제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다탁을 주문했습니다. 상판은 호두나무를 골랐습니다. 마침맞게 제가 다탁으로 사용하기 좋은 사이즈가 그 공방에 있었습니다. 높이가 낮은 좌식 테이블로 주문을 했습니다. 좌식이다 보니 의자는 필요 없었지만, 방석은 필요했습니다. 이불집에서 목화솜을 채운 방석을 주문 제작했습니다. 작은 방석은 이미 나온 제품이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크기의 큰 방석은 없었기에 주문제작을 맡겨야 했습니다. 그렇게 차방을 만들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웠습니다. 차방을 만드니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에 들어와서 제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 나 있는 창문이 그것입니다. 아파트 옆이 바로 수락산이어서 집에서 수락산이 보입니다. 작은 방에 나 있는 창문은 수락산 방향이어서 창문만 열어도 수락산의 풍경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산의 풍경은 달라졌습니다. 풍경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웠습니다.  

  바깥쪽으로 난 창문이 마치 선물 같았습니다. 임대아파트의 호수는 내가 지정할 수 없었습니다. 추첨으로 정해졌습니다. 중간에 끼인 곳은 작은 방 창문이 복도 쪽으로 나있었지만, 제게 배정된 호수는 복도 끝이라서 수락산 쪽 방향으로 창문이 있었습니다. 제게 있는 얼마간의 운이 수락산이 보이는 바깥 쪽 창문을 준 것 같았습니다. 수락산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은 제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때때로 좋은 일이 생긴다고, 그러므로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창문 바깥으로 펼쳐진 수락산 풍경을 보면서 자주 되뇌었습니다. 

  차방에서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면서 제 안의 평화와 행복을 일구었습니다. 언제나 제게 주어진 것들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것들 안에서 만족해나가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작은 것들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일. 그런 식의 태도는 언제나 저를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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