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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6. 나는 세상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6월 1일 토 :  광양 가서 불고기 먹고 와선 야시장까지 즐기기





오전_카페


아삐에노 (백향과티)



오늘 오후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오전엔 한가로이 미뤄둔 할 일들을 하며 여유롭게 보내기로 했다. 거의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내 룸메와 처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거였다. 정말 간만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혼자 걸을 때에도 나름의 매력이 분명 있다. 이를테면, 예뻐 보이는 풍경을 발견하면 언제든 기꺼이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랄까. 



길치라서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예상치 못한 풍경들을 발견할 수 있고, 길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길도 헤매다가 유독 이 거리엔 야자수 같은 나무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순천 속 작은 휴양지 같은 느낌이었다. 골목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거 같다. 그리고 여기 카페는 어딜 가든 붐비지 않아서 좋다. 서울에선 어느 카페든 사람이 너무 많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힘들었는데 여긴 아니다. 어느 카페든 오롯한 혼자의 시간을 충분히 여유롭게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들어간 '아삐에노'라는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를 마시면서 한적하게 미뤄둔 일들을 모두 마쳤다. 뿌듯한 마음을 가득 안고선 룸메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숙소로 다시 갔다. 숙소에 가니 룸메가 할 일을 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꽤나 반가웠다. 





오후_순천~광양 라이딩


순천-광양 자전거도로 (윤슬길)



나와 룸메는 닮은 점이 많은데 하필이면 길치인 것도 닮았다. 그러면서 광양에 가서 불고기를 먹고 오겠다고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길을 나섰으니 길을 헤매는 건 당연했다. 우리가 있는 곳부터 광양 불고기 식당까지 왕복 24km였고, 예상 소요시간은 총 100분이었다. 우리는 저녁 7시 전까지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시간까지 포함해 넉넉잡아 3시 30분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길을 정말 헤맨 나머지 무려 총 4시간 45분이 걸렸고, 저녁 8시 15분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택시까지 타서 겨우 이 시간이었다. 한 명은 신호등만 건너면 일단 오른쪽으로 꺾고 보고, 한 명은 자꾸 반대 방향으로 가고, 그리고 둘 다 사거리만 나오면 지도앱을 켜고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러가며 방향을 찾았으니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었다. 그래도 광양까지 가는 길은 정말 예뻤다. 특히 중간에 있는 '윤슬길'은 유별나게 예뻤다. 그 길로 빠지는 길목에서 내가 헤매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내 옆을 쓱 지나가며 '뭐 찾나?'라고 말씀하셨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마치 주변에서 눈치 못 채게 접선하는 사람처럼 말을 거셨던 게 신기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시간이 촉박해서 '윤슬길'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광양 대한식당 (광양불고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룸메가 우연히 귀여운 소품샵을 발견해서 잠깐 자전거를 세우고 구경했다. '동구리 잡화점'이라는 곳이었다. 광양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그 가게 주인 분들이셨다. 광양의 첫인상을 그분들이 정해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가게 주인 분들 중 한 분이 우리가 가게를 구경하고 나올 때까지 가게 밖에서 우리 자전거를 누가 훔쳐가지 않도록 지켜주시다가 우리가 나오고 나서야 들어가셨다. 생색내지 않고 베풀어주신 그 친절 때문에, 나는 광양이 좋아졌다. 우리는 많은 불고기집들 중 '대한식당'이라는 곳을 선택했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도 너무 친절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고기도 맛있어서 우린 두 명이서 4인분을 시켜 남김없이 먹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밥을 시키면 밑반찬과 김칫국 또는 된장찌개를 주는데 김칫국이 시원하고 너무 맛있었다. 어딜 가도 광양불고기는 맛있겠지만 나라면 이렇게 친절하고 맛있는 가게를 선택할 거 같다. 



나는 정확히 어느 순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날 내가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다고 느꼈다. 숨은 차고, 배는 고프고, 힘은 들고, 시간은 촉박하고, 갈 길은 멀고, 찾아갈 길은 어려웠지만. 나는 그 24km의 라이딩의 어느 순간에서 그걸 깨달았다. 노래가 없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노래를 다시 튼 후에야 다시 걸음을 떼었던 내가, 잘 때를 제외한 모든 순간에 노래를 들어야만 했던 내가, 귀를 이어폰으로 막고서 노래를 듣는 대신 세상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료한 세상에서 재미를 찾아 유튜브나 ott를 뒤적거리던 내가, 자전거를 탈 때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과 스치는 풀잎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발로 직접 걷고, 내 귀로 직접 들으면서, 태어나 세상을 처음 만나던 그때처럼 다시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숨은 차고, 배는 고프고, 힘은 들고, 시간은 촉박하고, 갈 길은 멀고, 길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삶은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곳에 있는 거라고. 우리 두 사람은 온몸이 지쳤지만 여느 때처럼 즐거웠다.  





저녁_아랫장 야시장(1차), 파랑새창고(2차)


아랫장 야시장 전광판 속 한달살기 팀원들의 모습, 파랑새창고에서 세팅하는 민언니와 세철오빠



우리 때문에 6시에 모일 걸 7시에 모인 건데, 한 시간 넘게 지각해 버려서 미안한 마음 가득 안고 빠르게 야시장으로 갔다. 그러나 언니오빠들이 괜찮다며 우릴 먼저 챙겨주셔서 한시름 마음 놓고 야시장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옆 사람의 말도 잘 안 들렸지만 분위기가 너무 흥겨워서 나도 모르게 술을 빠르게 마셔버렸다. 언니오빠들도 그래서 한 시간 만에 막걸리 8병을 비웠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야시장이 어르신분들 헌팅 장소라고 한다. 너무 귀여운 사실이다. 청춘은 언제나 지금인 거지. 그리고 다른 야시장도 이런 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카메라로 돌아가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광판 화면에 띄워줬었다. 그래서 우리 차례가 되자 모두 사진을 찍었는데 세철오빠가 일어나서 팔을 휘둘렸다. 참 모든 순간을 100퍼센트 즐기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이 부러웠다. 그곳에서 30분 정도 더 있다가 우리 팀의 아지트인 파랑새창고로 이동해 2차를 즐기기로 했다. 또 모든 것에 진심인 분들이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세팅까지 마쳤다. 이런 걸 보면서 순간에 모든 마음을 담고 최선을 다하는 건, 삶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지금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인 거 같다. 이곳, 순천에서. 그리고 나는 삶을 사랑하는 방법도 새로 배우는 중인 듯 싶다. 여기, 한달살이팀원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최선을 다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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