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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건넨 임무

일본에서 팥죽(젠자이)을

by 희석 Dec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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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외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희석아

21일에 꼭 팥죽을 먹어야 해

할머니는 희석이가 잘되는 거 보고 죽어야 하니까

그리고 내년은 희석이에게 너무나도 좋은 날이니까

녹색으로 된 속옷 입구

금으로 된 거 몸에 지니고 다녀

할머니는 희석이를 제일 사랑해

알았지?


할머니의 애정이 한 문장씩 귀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할머니는 희석이가 잘되는 거 보고 죽어야 하니까’


할머니의 목소리가 끊어졌을 때

참아왔던 응어리진 울음이 전부 쏟아졌다


‘할머니는 희석이가 잘되는 거 보고 죽어야 하니까’


아들로서

친구로서

지인으로서

나로서


내 스스로가 내놓을 만한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나 보다

무언가를 달성하고 싶었나 보다



20일 일본으로 향하기 전

일본에서 팥죽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1.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간편식으로 된 팥죽


2. 팥죽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에서 먹는 팥죽


친구와 둘이서 여행을 하는 나는 친구에게 팥죽을 먹자며 물어보기가 굉장히 민망했다. 동시에 이왕이면 간편식으로 먹는 팥죽보다는 매장에서 직접 먹는 팥죽이 할머니께 떳떳하게 팥죽을 먹었다며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팥죽 먹을래? 21일이 동지여서 할머니가 팥죽 먹으라고 하셨는데...”


나도 친구도 팥죽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았으나 여행지에서 먹는 팥죽, 그리고 일본식 팥죽에 약간의 궁금함이 도움을 주었던 걸까. 밥을 먹고 팥죽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달았다.

너무나 달았다.


그리고 서로 마주 보며 작은 탁자에 앉아

팥죽을 먹는 모습이 너무나 웃겼다.


팥죽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 메시지로 연락이 왔다


‘일본에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할머니 시킨대로 팥죽 사먹어서 고맙다.건강,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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