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87호 선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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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에 대하여

수습부원 정성현

by 상경논총 Apr 11. 2022

1. 서론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할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있지만, 여러 종류의 백신이 개발되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백신을 통한 세계적인 집단면역은 2024년이 되어서야 갖춰질 것이라는 다소 희망적이지 못한 견해도 있다. 백신 공급 능력이 아직 세계적으로 20억~40억 도스에 미치지 못한다[i]는 점도 이유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일부 국가들이 백신을 독점적으로 확보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의 백신 확보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것이다.   

그림 1. Our World in data ( 27일 기준)


위의 표는 각 국가별 백신 접종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표를 보면 국가별로 백신 확보 수준이 매우 상이함을 알 수 있다. 가령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미 자국민의 1/3을 접종할 만큼의 백신을 확보했다. 반면에 브라질과 인도 등의 경우 누적 확진자보다 많은 양의 백신을 확보하긴 했지만, 매일 8만 명씩 발생하는 신규 확진자와 인구수 대비 백신 접종분을 고려하면 자국민 대다수가 면역을 갖추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WHO가 백신을 공동 구매 및 분배할 목적으로 설립한 COVAX는 22일 기준으로 57개국에 불과 백신 3,100만 분만을 제공했다.[ii] 이렇게 백신 확보의 양극화와 더불어 동시에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세계 백신의 60%를 생산하는 인도가 백신의 수출을 금지하는 등 백신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도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지식재산권은 발명, 상표, 디자인과 같은 산업재산권과 문학, 음악 작품 등에 법적으로 배타적으로 부여되는 권리를 의미한다. 지식재산권은 백신과 같은 발명품에도 예외는 아니며, 백신의 지식재산권은 해당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에게 백신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보장한다. 그런데 코로나-19와 같은 범인류적인 전염병 위기 속에서,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이 백신 공급에 있어서 장애물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지식재산권으로 인해 백신을 생산할 권리가 지식재산권을 가진 제약사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WHO, G20 정상회의에서 지속적으로 표출되었으며, 지난해 10월 인도와 남아공을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들은 전 세계적인 집단면역이 형성되기까지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하여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제약사들과 이 제약사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지식재산권 면제가 제약사의 심각한 수익 감소를 초래하고 나아가 백신 개발에 대한 동기를 저해하여 오히려 전염병 대응에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지식재산권을 면제하자는 측이 인류 모두를 위한 백신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지지를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이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만약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하면, 백신의 공급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백신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이때 제약사들이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백신 개발 및 생산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오히려 이는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현재 상황에서 백신을 제약사의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로 간주하는 것이 과연 백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료적,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각각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할 때와 그렇지 않을 경우의 효과를 살펴보고, 과연 어느 쪽이 현 상황에 더 적합한지 논할 것이다.




2. 본론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할 때-

먼저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할 때를 살펴보자. 그에 앞서 이 문제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를 백신의 공공재화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가 백신의 공공재를 의미할까? 공공재는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이러한 공공재가 되기 위해서는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할 때 대가 즉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비배제성과 나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비경합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리고 공급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사유재와 달리 정치기구 즉 정부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가 백신의 공공재화와 완전히 같지 않다. 만약 백신이 공공재가 되면 백신의 공급은 오로지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는 더 많은 기업과 국가들이 백신을 생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국가에서 백신 물량을 어느정도 조절하더라도 기업도 분명히 백신 생산에 참여한다. 그렇기에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를 백신의 공공재화로 동일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공급자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조치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럼 이를 토대로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할 때를 생각해보자. 지식재산권이 면제되면 백신 제조법이 오픈소스처럼 퍼지게 되므로, 백신 산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그리고 이는 많은 공급자가 추가로 시장에 참여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때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현실에서는 백신 부작용, 변종 바이러스, 신규 백신, 생산 시설 증설과 같은 수많은 외부 변수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원활한 논의를 위해서 외부 변수를 지식재산권 면제로 인한 공급자의 증가로 한정하고 그에 따른 수요/공급 그리고 가격과 거래량의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수요는 전형적인 의약품 시장의 수요로 공급은 통상적인 공급으로 가정할 것이다. 전형적인 의약품 시장의 수요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함께 할 것이다.


백신 시장에 공급자가 늘어날 때의 변화를 살펴보자. 공급자가 늘면 일반적으로 그에 따라 공급도 증가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공급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에 대한 답은 백신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관련이 있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수요가 가격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의미한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수요의 변화량/가격의 변화량으로 정의되며 이 값이 1보다 클 때는 탄력적 1보다 작을 때는 비탄력적 그리고 정확히 1일 때는 단위탄력적이라고 한다. 수요와 가격은 통상적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는 증가한다. 이때 가격의 변화량보다 수요의 변화량 즉 수요의 증가폭이 더 크다면 이를 탄력적이라고 말한다. 즉 수요가 가격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관점에서 백신 시장을 살펴보자. 위에서 수요곡선이 전형적인 의약품 시장의 수요 곡선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의약품의 성격 그리고 그에 따른 탄력성과 관련이 있다. 의약품은 필수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의약품은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그 수요를 쉽사리 크게 줄일 수 없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은 필수적인 의약품이다. 이러한 환자는 인슐린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곧장 인슐린을 소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의약품은 수요가 가격의 변화에 덜 예민하게 반응한다. 즉 가격의 변화량이 수요의 변화량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의약품은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은 필수재로써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의약품처럼 백신도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재화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백신의 공급이 증가하여 백신의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낮은 가격탄력성으로 인해 백신 수요는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상쇄할 만큼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할 만큼의 극적인 수요 증가가 없으므로 제약사는 이전에 비해 이윤이 감소한다. 때문에 제약사들은 백신을 공급할 경제적 유인을 잃고 백신 시장을 떠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백신 공급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 분석이 100%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분석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외부의 변수를 최대한 배제하였고 그 과정에서 현실 반영이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코로나-19 감염이 더욱 심각해지면 감염을 억제해야 하는 국가들이 백신에 부여하는 가치는 매우 클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낮은 가격탄력성으로 인해 제약사들이 입을 손실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약사들의 입장에서는 수요자들이 백신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이상 가격을 내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허나 탄력성을 이용한 이 분석이 가진 위와 같은 한계를 배제하더라도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가 무조건 백신 공급 위축으로 인한 손실로 귀결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 이유는 위의 분석은 경제적 관점만 고려할 뿐 우리 사회의 공유가치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유가치는 단순한 경제적 관점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카고 대학교의 리처드 탈러 교수는 “재난 상황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칠 때이지, 기회로 삼아야 하는 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재난 상황에서 흔히 발생하는 물과 같은 필수품에 대한 바가지 요금을 두고, 이를 증가한 수요와 감소한 공급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합리적 시장 상황이라고 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비판한 것이다. 리처드 탈러 교수는 이러한 바가지 요금이 설령 경제논리에 부합할지라도 이는 사회의 신뢰를 저해하고 사람들의 반감을 유발하여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 문제도 이러한 공유가치와 관련이 깊다. 현재 세계는 백신을 둘러싸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그리고 각 개별 국가들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타국의 백신을 웃돈을 주고 가로채는 행위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부추기고 있다. 만약 백신의 지식재산권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의 백신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되고 백신을 통한 이윤이 특정 국가 및 기업에 귀속된다면, 이는 앞서 언급한 국가 간의 갈등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신뢰를 해쳐 전염병 대처 등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기에 백신의 지식재산권이 초래할 수 있는 공유가치 상의 손실을 고려할 때,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단지 경제논리로만 옹호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음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유지할 때-

그렇다면 반대로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유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공급자를 증가시켰다면, 지식재산권 유지는 공급자 수에 변화를 야기하지 않는다. 즉 현재의 시장 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럼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유지했을 때의 영향은 현재 백신 시장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백신 시장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과점 시장이다. 과점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무한히 많은 경쟁 시장과 달리 공급자가 소수인 시장이다. 때문에 과점 시장에서의 공급자는 강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력과 첨단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 기업이나 쉽사리 백신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높은 진입장벽이 백신 시장의 공급자수를 한정시키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백신 시장은 머크, 화이자, 사노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4개의 회사가 87% 가량을 점유하고 있으며[iii], 당장 코로나-19 백신도 그 수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으로 한정적이다.


백신 시장이 과점 시장이라는 점은 과연 무엇을 시사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업들 간의 경쟁 저하이다. 일반적인 경쟁 시장에서는 공급자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고자 적극적으로 경쟁에 임한다. 과점 시장에서도 소수의 공급자들 사이에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공급자들이 강한 시장 지배력을 토대로 서로 간의 상호 협력 소위 담합을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가령 코로나-19와 관련해서,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하여 화이자 및 모더나와 같이 이미 코로나-19 백신 시장에서 높은 시장 지배력을 사진 기업들이 끊임없이 개량 백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반면 2018년에는 천식치료제인 ‘알부테롤’의 가격을 마일란 등의 제약사들이 조직적 담합을 통해 34배 이상 올린 사실이 적발[iv]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과점 시장에서 소수의 공급자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과점 시장에서 이 공급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가령 백신 회사 A가 수익을 목적으로 가격을 인상하였다고 하자. 이때 경쟁사 B, C의 입장에서는 A과 마찬가지로 함께 가격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기회에 A와 차별화되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오히려 가격을 인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즉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통해 경쟁자 A를 퇴출시키는 전략을 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점 시장에서 발생하는 소수의 공급자들 사이의 경쟁을 보여주는 것이 굴절수요곡선 이론이다.


그림 2

                                                                           

<그림2>을 굴절수요곡선이라고 하는데 이 곡선은 과점 시장의 기업 A가 직면하고 있는 수요곡선을 의미한다. 먼저 가격이 P0 이하일 때를 보자. 만약 A가 가격을 P0 이하로 낮춘다면 다른 기업들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가격을 인하한다. 그렇다면 A의 가격 인하는 과점 시장에서 특별한 경쟁력을 갖지 못하므로 A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격이 P0 이하일 때의 기울기(가격의 변화량/거래량의 변화량)은 거래량의 변화가 가격의 변화량보다 작으므로 가파른 형태를 보인다. 반면 A가 가격을 P0 이상으로 올리면 어떻게 될까? 과점 시장의 다른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쟁자 A를 퇴출시키기 위해 A와 반대로 가격을 인하할 것이다. 그러면 P0 이상에서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A에 대한 소비를 줄인다. 결국 P0 이상에서는 가격의 변화량(가격 인상)보다 거래량의 변화량(거래량 감소)가 더 크기 때문에 이때의 곡선의 기울기는 완만한 형태를 보이며, 그것이 <그림2>에서 P0 이상에서의 곡선이 점선이 아닌 실선인 이유이다.


만약 백신 시장도 굴절수요곡선에서 본 것과 같이 소수의 공급자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이때 백신의 가격 및 공급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이 가격을 크게 올려 폭리를 취하려고 해도 다른 기업들이 반대로 가격을 낮춤으로써 급격한 백신 가격의 상승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과점 시장인 백신 시장에서 굴절수요곡선의 상황과 반대인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소수의 공급자들이 강한 시장 지배력을 토대로 상호 협력 즉 담합을 시도할 것이다. 공급자가 한명인 독점 시장에서는 단일 공급자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장 균형보다 높은 가격과 낮은 생산량을 설정한다. 이러한 행위는 공급자의 이윤은 극대화할 수 있지만, 거래가 시장균형이 아닌 지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소비자와 사회 전체의 이윤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와 유사하게 과점 시장에서도 소수의 공급자들 사이의 상호 협력 즉 담합으로 인해 가격과 거래량이 독점 시장과 같이 형성될 수가 있다. 따라서 이때 소수의 공급자들이 상호 협력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가격 상승 혹은 공급량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독점 시장과 마찬가지로 소비자와 사회 전체의 이익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현실에서 과점 시장의 기업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기업들에게 있어서 경쟁을 통해 상대를 퇴출시키는 것 못지 않게 서로 간의 협력 즉 담합을 함으로써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합이 만약 필수 의약품까지 확대된다면, 담합으로 인해 발생한 접근성의 제한은 환자 개개인과 그 가족들과 같은 소비자 그리고 이들을 위해 추가적인 지출을 해야 하는 국가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에이즈가 있다. 19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장 큰 사회문제는 에이즈였다. 당시 40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있었지만 비싼 치료제 가격 때문에 정상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1만 명에 불과했다. 이때 에이즈 치료제는 소수의 제약사가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과점 시장이었으며 이때 연간 에이즈 치료제의 가격은 약 1만 달러였다. 그러다 2000년 에이즈 치료제의 가격은 하루 약 0.21 달러까지 크게 떨어졌는데[v], 그 배경에는 에이즈 치료제의 지식재산권이 완화되면서 에이즈 치료제 시장이 가진 과점 시장의 성격이 약화되었던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에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위의 에이즈 치료제처럼 코로나-19 백신 시장에도 담합이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국가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백신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지식재산권이 이러한 담합을 뒷받침한다면, 이는 백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널리 공급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를 장기화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경제적 또는 기타 사회적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히 크다.




3. 결론

위의 논의를 종합하면 일단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먼저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했을 때 이론적으로는 탄력성의 영향으로 백신의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지식재산권으로 인해 백신 접근권이 제한된다면, 그로 인해 백신을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갈등 혹은 국제적인 전염병 대처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경제적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유가치 즉 사회적 가치에서의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편 백신의 지식재산권이 유지되면, 이러한 지식재산권은 독점적 지위를 공급자에게 부여함으로써 과점 시장에서의 담합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담합은 에이즈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공급자에게는 유익할지라도 소비자와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위의 주장만을 근거로 지식재산권을 반드시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글은 논의를 원활하게 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기보다 이론적 접근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가령 현재 백신의 수요-공급을 소비자들의 높은 지불의사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소비자의 지불의사가 높기 때문에 백신 가격이 높고 그에 따라 일부 국가가 백신을 구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지식재산권 면제가 오히려 가뜩이나 물리적으로 부족한 백신 공급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이 글은 백신의 공급보다 수요에 초점을 맞춰서 전개되었다. 만약 세계적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한 백신 생산 능력 또는 백신 생산 능력의 획기적 개선 가능성과 같은 공급과 관련된 요소들도 보다 복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또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이 글만으로 백신의 지식재산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백신의 지식재산권 문제는 단순히 제약사의 이익만을 고려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며 지식재산권을 면제 혹은 유지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 이익과 백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모두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


     






































 

[i] 박재우, 백신 접종 시작됐지만 코로나 2024년까지 지속될 수도, 뉴스1, 2020.12.20

[ii] 최현준, WHO 커지는 백신 접종 불평등에 도덕적 분노 느낀다, 한겨레, 2021.03.23

[iii]한아름, 제약공룡의 굴욕… 백신 시장 대격변 왔다, 머니S, 2021.03.31

[iv] 진성철, 일반의약품 가격 폭등 제약사 담합 탓, 중앙일보, 2018.12.14

[v] 신성식, 에이즈 치료제처럼 코로나 백신 특허권 풀어 생산 늘리자, 중앙일보, 2021.04.07


<그림1>. Our World in Data, Coronavirus (COVID-19) Vaccinations, 2021.03.27

<그림2>. 김철환, 경제학 주요개념, 20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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