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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글씨냐?

어른들을 위한 GEN-Z Guidebook

by just Savinna

안녕하세요! 곽수현 사비나입니다.

무사무탈하시지요?


오늘은 '글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에 정성껏

글씨를 써 본 적이 언제인가요?

흘려 쓰고 아무 종이에나

급하게 쓴 것 말고요!


저도 어제 계약서에

자필서명을 하기 위해

출력한 종이에

곱게 제 이름을 적은 것 밖에는 없어요.

은행에서도

디지털 기기에

디지털 펜으로 서명을 하니

종이에 펜이나 잉크로

(볼펜 속에도 잉크가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여기면 맞지 싶습니다.


저(40대 말 50대 초)의 연배의 분들은

기억하실 거예요.

정자 쓰기 대회, 혹은

서예 대회와 상장이요.

글씨를 잘 쓰면

칭찬을 받았습니다.

못쓰면 잘 써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고요.


이는

바른 글씨, 혹은 정해진 글씨가 있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배움으로써 교육이 된다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사회 분위기도 있고요.


정자 쓰기 연습을 할 정도로

'바른 글씨 체'가 필요했던 것은

손글씨가 많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있게,

가독성과 가시성도 있어야 했고

붓으로 글을 썼던 분들이 여전히

남아 계시기에 아름다움으로써의

글씨체에 대한 선호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역시

칠판에 분필로 글을 썼고,

분필은 질이 안 좋아 잘 안 써졌고요.

그림도 칠판에

선생님들이 그리셨고요.

교구라고 해도

큰 종이를 위로 넘기는

궤도가 전부였습니다.

인쇄 출력이 어려웠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문서를

일일이 손으로 글씨를 썼습니다.


저도 글씨를 잘 쓰고,

저만의 글씨체가 있고,

필기구를 좋아하는 편이며

서예를 배우지는 못해 잘 쓰지는 못하지만

서예의 맛을 알기에

전시회도 보러 다니고 해서

글씨나 글자체에 대해 민감한 편입니다.


해서

학생들에게

"글씨 잘 써라."

며 조언을 꾸준히 했습니다.


언젠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호자/학부모의 서명을

받아와야 하는 것이 있었어요.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상급학년 학생들은 눈치가 빤해서

본인이 부모의 서명을 해서

내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사정을 들어보면

부모님 서명을 받기 어려운 상황

(같이 안 산다)이거나,

본인의 실수로 잊었거나,

혹은 부모님과 합의하에

부모님께 내용 전달은 하되,

서명은 본인이 하겠다거나 하는

기능적인 관계의 경우가 있어요.


이도저도 아닐 경우는

그냥 후딱 해치워버리고 싶다는

편의주의적인 생각이기도 하고요


"서명받아오세요."

하고 나눠주자마자 10분도 안되어

"여기요."

하고 내는 경우도 있어요.

뭐 청소년들이니까요.


여하튼, 그러한 관례가 있음을 아는 저라서

학부모/보호자 서명이 들어간

종이는 늘 꼼꼼하게 살핍니다.

아뿔싸!

한 학생이 부모님의 서명을

너무 엉망으로 한 거예요.


이게 글씨냐?

아니 해도 제대로 하지,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10대 남자 청소년이

발로 쓴 글씨 같은데! 하면서

그 학생을 불렀습니다.


"잘 지내지?"

"네."

"요즘 무슨 게임하고 노니?"

"어쩌고랑 저쩌고요."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나게 잘해라."

"네!"

"아버지 바쁘시니?"

"네, 일이 많으시다고 늘 늦고 그러세요."

"얼굴을 보긴 하고?"

"네, 주말엔 그래도 저랑 잘 놀아주세요."

"뭐 하고 노는데?"

"뭐 그냥 나가서 뭐 먹거나 시켜 먹거나요."

"오 좋다. 아버지 뼈 빠지게 일하시고 번돈으로 네가 다 먹는구나 꿀이네."

"ㅋㅋㅋ."

"잘해드려."

"네..."


"그런데 아무리 아버지 바쁘셔도 이건 아버지가 해주셔야 할 것 같아."

"네?"

"이거 여기 서명."

"그거 아버지가 하신 건데요?"

"에이. 너무했다. 아무리 내가 널 믿는다고 해도. 글씨가 좀 아닌 거 같아요. 네가 한 게 너무 티가나."

"아오 선생님, 정말 이거 아버지 서명이에요."

"...."

"아니 정말 저 못 믿으시는데.... 확인시켜 드릴까요?"

"...?"

"우리 아버지 글씨 정말 못쓰세요."

"!"


충격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어른이란

글씨가 어른 글씨여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 어른 글씨라 함은

정자로, 또박또박,

(아무리 개개인의 스타일이 있더라도)

뭔가 그래야 하는 겁니다.


교사로서 영어 주관식이나

수행평가 등 채점하면서

알파벳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악필을 오점 처리한 경우

억울해하는 학생들에게


이번을 계기로 글씨란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쉽게 작성해야 하며

특히 시험 및 중요 문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배운

좋은 기회로 삼자고 말을 했는데요.


이는 언젠가는 너의 글씨가

어른 글씨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학생을 격려하는 의도로

그래도 미국어른 글씨보다 낫다며

미국 어른들도

글씨 못쓰는 사람 많다고

약간 디스 한 후에

동양인들 특히 한국인들이

글씨는 '잘'쓰니

너도 못쓰는 것은

아니라고 위로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글씨를 못쓰는 사람(어른)이 너무 많았고

정자 운운하는 제가 오히려

글자 판독의 정확도가 낮았습니다.

글자를 못쓰는 분들은 오히려

온갖 글자를 다 잘 읽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디지털시대인 지금은

글자를 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손으로 필기구를 잡는

자세 자체가 어색해졌습니다.

반면

청년과 청소년,

아니 더 어린

2-3세 유아, 어린이들이

훨씬 더

손가락 사용에 발달되었습니다.

검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하거나

손가락으로 버튼이나 자판,

화면이나 노트북의 마우스 터치패드를

다루는 솜씨는 기가 막힙니다.

게임하는 그 손가락!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섬세하고요.

손크기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미 학교 현장에서

글씨에 대해 강조하는 대신

타이핑시 오탈자 꼭 확인하고

자간 평간 줄간 편집을 강조합니다.

글자 폰트와 크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라이선스 등에 주의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참에

본인의 개성 있는 폰트 개발을 해서

직업이 되기도 한다고 조언을 합니다.


손글씨자체가 사라졌고

종이 자체가 사라졌으며

앞으로 '클래식'이 되겠지요.


타이핑도 이미

사라져 가는 문화가 되지 싶어요.

PC가 보급될 무렵

어르신을 놀리는 듯한 '독수리타법'이

다시 레트로 해서 돌아왔습니다.

태어나자마자부터

패드로 화면을 터치하는 세대는

자판에서 10개의 손가락으로

타이핑 치는 것을 못해서

특강 수업을 통해 배우기도 합니다.

(줄넘기학원 있는 것 아시죠?)

1분에 ***타를 친다 하면

진기명기 보듯 합니다.

AI 덕분에

STT(Sound To Text)의 정확도가 얼마나 높아요.

저도 스마트폰에

손으로 타이핑하는 것보다

STT로 카카오톡이나 문자

혹은 검색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하더라고요.


제 남동생 4학년 때(1998년이지 싶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우리 개똥이가 글 쓰는 것을 싫어해서

점점 더 글씨를 못써요.

1-2학년 때는 글씨가 바르고

이뻤는데 요즘은 흘려 쓰고

막 써서 지도편달 해주세요."


했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 개똥이가 어른이 되면

콤퓨타가 지배하는 시대가 되니

서명만 하면 되니까 두세요."

라고 했다고

어머니께서 웃으며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같은 선생님인데

그분은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시고

아끼는 제자 개똥이에게

글씨 바르게 쓰기로 인한 스트레스를

단칼에 내쳐주셨죠.


저는 왜 그런 선생님이 못되었을까요?


지금 돌아보면,

저는 사라져 가는 문화를 가르쳤던 거예요.


요즘,

손글씨, 손 편지가 감동을 받는 시대입니다.

손글씨는 어렵고 귀하며 시간이 들기에

감동이 된 시대입니다.


저처럼 여러분도

디지털 변환의 시대에

사라져 갈 것을 '습관적'으로

강요하는 어른은 아닌지

되돌아보시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제10회 교보문고손글씨대회에서

으뜸상 수상을 한

모하메드 호세이파(청소년 19세)의 글씨를

옮기며 마무리합니다.


https://store.kyobobook.co.kr/handwriting/display



청소년과 청년을 좋아하는 사비나가 붓 가는 대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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