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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Dec 04. 2023

그래 술 한잔 하는거야

미리는 순간 금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멈칫했지만 홍 대리의 수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과장님. 제가 동기놈이랑 먼저 백세 술집에 가서 안주 싹 세팅해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리하고 빨리 오세요. 하하.”

 

미리는 퇴근 시간을 살짝 넘긴 채 시계를 바라보다가 대각선 맞은편 고 부장의 책상 너머로 그의 머리통이 있는지 확인했다.

고 부장은 집중할 때 머리를 숙여 서류를 보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꼭 일어서서 그의 존재를 확인한 후 행동해야 했다.

고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눈을 감더니 다시 부릎뜨고 팀원들이 있는 책상 쪽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자 오늘은 이만 하고 다들 들어가자구. 알아서들 퇴근하시고 나는 먼저 갑니다.”

그가 흥얼거리며 사무실 문을 나섰다.

고 부장이 흥얼거리는 날은 어김없이 술 약속이 있는 날이었고, 그건 다음 날 술냄새로 확인이 가능했다.

 

미리도 후다닥 짐을 챙겨 사무실 문을 나왔고, 백세 술집을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러 메이크업과 머리를 한번 더 매만졌다.

횡단 보도를 건너 두 블럭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꼬막이 유명한 남도 스타일의 백세 술집이 있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홍대리도 직장생활 4년차에 아저씨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이 노포 식당을 최애 맛집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홍대리 동기는 누굴까?”

아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모르는 남직원이 한명 더 온다는 사실이 갑자기 미리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미리는 백세 술집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홍 대리를 찾기 위해 식당 내부를 쭉 둘러봤다.

“황 과장님. 여기에요. 여기.”

미리가 헤맬 틈도 없이 홍 대리는 자기 옆자리로 손을 가리키며 그녀를 불러제꼈다.

미리는 의자에 앉으며 맞은편 홍 대리의 동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규민이 동기 심희원이라고 해요. 과장님 사무실은 6층 이시잖아요. 저는 바로 그 윗층인 7층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불러주셔서 너무 기분 좋습니다. 자 한잔 하시죠.”

앉자마자 홍 대리의 동기인 심 대리는 소주잔에 진로이즈백을 꼬르륵 따라주었고, 그 셋은 빈 속에 각자 잔을 털어넣었다.

“어? 근데 요즘 친구들은 이렇게 막 달리는 거 안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심대리님은 술 잘드시나봐요.”

“하하 과장님.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르고 제 친구들은 무지하게 퍼먹습니다. 없어서 못먹죠. 과장님 이 꼬막 한번 드셔보세요. 역시 음식은 남도라니까요.”

 

미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백세 술집의 꼬막은 양념이 묻혀진 스타일이 아니라 그저 벌교 꼬막을 쪄서 내기 때문에 그 자체의 맛으로 즐길 수 있었고 소주와의 조합이 끝내줬다.

홍대리와 심대리는 미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20대 특유의 발랄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발산했다.

그날 그 둘은 백세 술집을 구성하고 있는 40대 중후반과 50대 아저씨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식당 사장님까지 젊은 총각들이 이쁘다면서 조개 국물과 부침개를 서비스로 주셨다.

미리와 그 둘은 어느 새 소주 3병을 비웠다.

“과장님. 저 질문 하나 해도 되요?”

“어 홍대리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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