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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코코 Oct 30. 2024

스물하나

내가 나를 아껴야 아이도 행복해진다.

많은 엄마들이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된다. 도와주는 아빠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 그건 소수의 불과한 가정일 것이다. 이렇듯 집안 내에 한 사람이 많은 걸 맡아서 하게 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나의 하루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지 모를 때도 많을 것이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해내고, 모든 걸 다 마치면 밤이 깊어간다. 하루의 끝에서 거울을 보면 어딘가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 모든 걸 챙기고 다해주고 싶은 엄마이지만, 정작 나 자신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새 생명을 키우고 사랑을 주는 역할이지만, 동시에 잃어가는 것들이 많다. 이전에 내가 꿈꿨던 모습, 이루고 싶었던 일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오며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가슴은 뿌듯하고 벅차오르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는 이름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매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이 자존감의 문제, 이 사라지는 ‘나’가 결국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한다. 내가 하루하루 자신감 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을 배우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세상에 당당히 나아가길 바란다면 먼저 그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속에는 조그만 의문이 생긴다. 

“나는 과연 나 자신을 그렇게 아끼고 있는 걸까?”

어느 날, 작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안해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엔 사소하게 넘겼을 일들이 나의 아이들과 마주할 때 불쑥불쑥 감정으로 드러나는 걸 보면서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존감이 흔들릴 때 아이들과의 관계도, 그 아이들의 자존감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지, 왜 작은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를 생각해 봤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나면 늘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쌓여온 피로와 무력감이 나를 지배해,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나의 낮은 자존감이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느 날 밤, 깊이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내가 먼저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그래야 이 사랑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고. 그때부터 작은 변화들을 시작했다. 새벽에 잠깐이라도 일어나 명상을 하거나,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였다. 하루하루를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그저 내가 나다워지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잠시 멈추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그 작은 습관이 큰 힘이 되었다. 이 변화를 통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다. 화를 낼 상황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었고, 아이들의 행동에도 좀 더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늘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라야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긍정적인 말을 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문득 내가 아이들에게 실제로 전하는 말과 행동을 돌아보면, 그것이 진정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문제는 바로 엄마인 나에게 있었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먼저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 안의 불안과 자책이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미묘하게 스며들고 있었고,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말로도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나의 자존감이 아이들에게 가장 큰 본보기가 되고, 나 자신을 존중하는 모습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조금씩 더 나 자신을 돌보고, 내가 나로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을 아이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는 강박보다는, 매일 조금씩 나 자신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사랑하는 길임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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