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53번.
이 작품의 제목은 「1805」이었다가 연재가 끝날 무렵 「전쟁과 평화」로 결정됩니다. 톨스토이는 1805년부터 1820년까지 15년의 시간과, 광활한 러시아를 배경으로 등장인물 559명의 운명을 냉엄하게 담아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톨스토이는 모든 소설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를 달리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라고 언급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인 피에르는 뚱뚱한 덩치의 젊은이입니다. 사교계에도 잘 적응못하고, 폭행사건에 연루되는 등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던 중, 백작의 죽음으로 거액을 상속받게 됩니다. 그러나 바실리 백작의 치밀한 공작으로 그의 딸 엘렌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큰 키에 잘생긴 청년 안드레이 공작은 권태로운 결혼생활과, 허세가 난무하는 사교계에 염증을 느끼는 허무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도피처로 나간 전쟁터에서 죽음의 고비를 맞게 되고, 이를 계기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됩니다.
* "우습군요." 피에르가 말했다. "당신이 스스로를, 스스로를 무능하다 여기고 자기 삶을 망가진 인생으로 생각하다니. 당신 앞에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있잖아요." (···)피에르는 안드레이 공작을 모든 완전함의 본보기로 여겼다. (···)피에르는 모든 부류의 인간들을 침착하게 대하는 안드레이 공작의 능력, 비범한 기억력과 박식함, 무엇보다 일하고 배우는 능력에 늘 감탄했다.
* 안드레이 공작이 러시아를 떠난 후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가지 않았지만 그는 그사이 많이 변했다. 얼굴 표정, 몸짓, 걸음걸이에서는 예전의 가면을 쓴 듯한 태도와 피로와 나태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불러일으킨 인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즐겁고 흥미로운 일에 몰두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은 안드레이 공작을 자신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며 그에게서 커다란 성공을 기대했다.
* 안드레이 공작은 전투의 전반적인 추이에 관심을 두는 사령부의 몇 안 되는 장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자신이 수보로프 이후 처음인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의 충돌을 목격하고 그 속에 참여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무심결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의 모든 용기보다 더 강한 것으로 입증될지 모를 보나파르트의 천재성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영웅이 수치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별이 가득한 밤이었다. 전투 당일인 전날에 내린 하얀 눈 사이로 거무스름하게 한 줄기 길이 보였다. 지나간 전투에 대한 인상들을 곱씹고, 자신이 승전 소식으로 불러일으키게 될 인상들을 즐겁게 상상하고, 총사령관과 동료들의 송별회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안드레이 공작은 역마차를 타고 질주했다.
* "당신은 왜 떠날까요? 난 압니다. 당신은 군대가 위기에 처한 이 순간에 군대로 달려가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 겁니다. 난 잘 압니다. 친구, 그것은 영웅주의예요. (···)하지만 당신은 철학자니 철저히 철학자가 되어 다른 측면에서 사물을 보세요. 그러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맡겨요." (···)안드레이 공작은 냉정하게 말했으나 속으로는 '난 군대를 구하기 위해 가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 안드레이 공작은 그 끝없이 혼잡하게 이어지는 부대, 짐마차, 군수품 수송차, 대포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본 후 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가는 온갖 종류의 짐마차로 눈길을 돌렸다. (···)도로변을 따라 때로는 가죽이 벗겨지거나 벗겨지지 않은 말들의 사체가, 때로는 부서진 짐마차들과 그 옆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쓸쓸히 앉아 있는 병사들이, 때로는 떼를 지어 이웃마을로 가거나 마을에서 수탉과 숫양과 건초와 무언가로 가득 채운 자루를 끌고 오는 낙오병들이 보였다.
* 안드레이 공작에게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듣기 좋은 목소리가 말했다. "난 말이야, 만약 죽음 이후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만 있다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거야, 그렇지 친구! (···)하지만 여전히 두려워하지!" 처음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두려운 거지. 영혼이 천국에 간다고 아무리 말해 봤자 사실 우리는 알잖아. 천국은 없고 오직 대기뿐이라는 것을 말이야."
* 안드레이 공작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한쪽 다리가 부러져 마구를 벗겨 낸 말이었다. 포차에 매인 말들 주위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다리에서 피가 샘처럼 솟구쳐 흘렀다. 포차의 앞바퀴들 사이에는 죽은 사람들이 몇 명 쓰러져 있었다. (···)그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다시 사기가 올랐다. '두려워 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말에서 내려 대포들 틈에 섰다.
* "어쩌다 대포가 방치된 겁니까?" 바그라치온은 이렇게 물으며 대위를 향해서라기보다 웃음을 터뜨린 자들을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각하." 안드레이 공작은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장군님은 저를 투신 대위의 포병 중대로 파견하셨습니다. 저는 그곳에 갔다가 사람들과 말이 3분의 2가량 죽고 대포 두 문이 망가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엄호 부대는 없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슬프고 답답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낯설었고, 그가 기대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 느닷없이 부자에다 베주호프 백작이 된 피에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속 편하게 살던 자신이 이제 잠자리에서나 겨우 혼자 남을 정도로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분주하게 지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의 속내가 진심이냐 아니냐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볼 틈이 없었다.
* 엘렌과의 결혼은 불행한 일이 될 테니 그녀를 피해 달아나야 겠다고 결심한 그날 밤 이후 (···)피에르는 여전히 바실리 공작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들 눈에 그와 그녀의 관계가 하루하루 점점 더 깊어지는 것으로 비친다는 점, 자신은 더 이상 그녀를 예전의 눈길로 바라볼 수 없고 그녀를 떠날 수 없다는 점, 끔찍한 일이 되겠지만 자신의 운명을 그녀와 함께 엮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점을 두렵게 느끼고 있었다.
* 피에르는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입장은 그를 기쁘게도 하고 숨 막히게도 했다. 그는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한 상태였다. 무엇을 분명히 볼 수도, 이해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어쩌다 일어난 걸까? 너무 빨라!'
* 나폴레옹의 명령서는 다음과 같았다. -- 병사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평소의 용맹함으로 적들의 대오에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킨다면 나는 포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순간이라도 승리가 의심스러울 경우 그대들은 적에게 가장 먼저 공격받는 그대들의 황제를 보게 될 것이다. 승리에는 주저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나폴레옹.
* 나폴레옹은 (···)러시아 군대가 저 멀리서 진군하고 있는 구릉을 말없이 응시하며 협곡에서 들리는 사격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만 해도 아직 야윈 편이던 얼굴은 근육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빛나는 눈동자가 조금도 흔들림 없이 한 곳을 향했다.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는 안개 속에서 보았다. 프라츠 마을 부근의 두 언덕 사이에 있는 우묵한 곳에서 러시아군 종대들이 총검을 번뜩이며 골짜기를 향하여 한 방향으로 계속 전진하다가 안개의 바다 속으로 차례차례 사라지는 모습을.
* 안드레이 공작은 다시 군기를 잡고 깃대를 질질 끌면서 대대와 함께 달렸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은 그 운명이 어떤 식으로 끝나는지 보지 못했다. 마치 가장 가까이 있는 병사들 가운데 한 명이 단단한 몽둥이로 머리를 힘껏 친 것 같았다.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불쾌했던 것은 통증이 주의를 흩트려 그가 주시하던 장면을 못 보게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쓰러지는 건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뒤로 쓰러졌다.
*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어째서 예전에는 저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마침내 저 하늘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군! 모든 것이 공허해. 이 무한한 하늘 외에는 모든 게 다 허위야. 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심지어 그마저도 없군. 정적과 평온 외에 아무것도 없어,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피를 흘리며 누워 자기도 모르게 나직하고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고통은 전에는 몰랐지.' 그는 생각했다. '그래, 난 지금껏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그런데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와 프랑스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여기 아름다운 죽음이 있군." 나폴레옹은 볼콘스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것이 자신을 두고 한 말이며, 그 말을 한 사람은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저 높고 무한한 하늘과 자신의 영혼 사이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에 비해 이 순간 나폴레옹은 몹시도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보였다.
* 이 순간 그에게는 나폴레옹을 사로잡은 모든 관심거리가 몹시 초라해 보였다. 자신이 보고 헤아리게 된 드높고 공평하고 선한 하늘에 비하면 그 저급한 허영과 승리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는 자신의 영웅이 너무도 졸렬해 보였다. (···)생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산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었던 죽음의 한층 더 보잘것없음에 대해 생각했다.
<페이지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