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355번.
로맹 롤랑은 「전쟁과 평화」를 "우리 시대의 가장 방대한 서사시, 현대의 「일리아스」"라고 언급합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위해 호메르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원전을 읽기 위해 그리스어까지 배웠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인간들의 운명과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높은 곳에서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신들의 냉엄한 시선은, 「일리아스」에서 착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피에르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한 나타샤는 노래와 웃음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피에르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숨긴 채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다 전쟁터로 가버립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나폴레옹을 존경하며 명예를 얻고자 다시 참전한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안드레이 공작의 부상 소식을 듣게 된 나타샤는 그를 찾아가 용서를 빌고 정성껏 간호합니다. 피에르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본 후, 자신이 숭배했던 나폴레옹을 죽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모스크바를 점령한 프랑스인들에게 체포되어 포로가 됩니다.
* 전쟁이 시작되었다. 즉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모든 본성을 거스르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역사가들은 순진하고도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올렌부르크 대공이 당한 모욕, 대륙 봉쇄령 위반, 나폴레옹의 야심, 알렉산드로의 단호함, 외교관들이 실책 등이 그 사건의 원인이라고.
*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과 이성을 버린 채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군하며 자기 종족들을 죽여야 했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를 위해 살고,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이용하며, 지금 이런저런 행동을 할 수 있거나 없는 것을 자신의 온 존재로 느낀다. 그러나 행동을 하는 순간 어느 한순간에 행해진 그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역사의 자산이 된다.
*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지만 모든 인류의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 역사 사건에서 이른바 위대한 사람은 사건에 명칭을 부여하는 라벨이다. 그들은 라벨과 마찬가지로 사건 자체와 거의 연관이 없다. 스스로에게는 자기 의지에 따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각 행동도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모든 과정과 연관되어 있고 태초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 나타샤는 더 평온해지긴 했지만 더 밝아지지는 않았다. (···)소리내어 웃거나 혼자 있을 때 노래를 해 보려고 하면 곧 눈물에 목이 메었다. 후회의 눈물, 돌이킬 수 없는 순수한 시절에 대한 추억의 눈물, 무척이나 행복했을지도 모를 젊은 생을 그처럼 헛되이 망친 것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었다.
* 그 시절 가운데 단 하루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인들 내놓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영원히 끝나 버리고 말았다. (···)삶 속에 어떤 기쁨도 없었다. 그러나 생은 흘러갔다.
* 이따금 나타샤는 피에르가 그녀 앞에서 당황하고 어색해하는 것을 눈치챘다. 특히 그녀를 기쁘게 할 만한 무언가를 하려 하거나 대화 가운데 어떤 것이 나타샤를 괴로운 기억으로 이끌까 봐 두려워할 때 그러했다.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힌 나타샤에게 만일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라면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청혼하며 사랑을 구했을 것이라고 무심코 말한 후, 피에르는 그녀에 대한 자기 감정을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피에르는 여전히 사교계에 출입했고, 여전히 술을 많이 마셨으며, 여전히 나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전장으로부터 점점 더 불안한 소문이 들려오는 요즈음, 나타샤가 건강을 점차 회복하고 더 이상 그에게 예전처럼 세심한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요즈음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한층 더 불안한 감정이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 피에르는 이미 오래전부터 군대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 (···)그가 입대 계획을 실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예정된 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어렴풋한 생각 때문이었다.
* "왜 가려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요? 왜······." 나타샤는 피에르의 눈을 도전적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이 날 만큼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떨구었다.
* 안드레이 공작은 (···)내일의 전투가 분명 자신이 참전한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전투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난생처음 머리에 떠올랐다. 죽음은 일상과 아무 관련 없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판단 없이, 오직 자신이나 자기 영혼에 관한 것으로서만 생생하게, 거의 확실하게, 단순하게, 무시무시하게 떠올랐다.
* '명예, 사회 복지, 여인을 향한 사랑, 조국. 이 그림들은 참으로 위대해 보였고, 심오한 의미로 충만한 것 같았는데! (···)그의 인생에서 세 가지 주요한 슬픔이 특히 그의 관심을 끌었다. 여인을 향한 사랑, 아버지의 죽음, 러시아의 절반을 점령한 프랑스군의 침략이었다.
* '죽다니, 내일 내가 죽임을 당하다니,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다니······· 이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되다니.' 그는 이 삶 속에 자신이 없는 것을 생생히 그려 보았다.
* 많은 역사가들은 말한다. 프랑스군이 보로지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던 것은 나폴레옹이 코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만일 코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전투 전과 전투 동안에 더 천재적인 명령을 내렸을 거라고, 나아가 러시아는 멸망하고 세계의 양상은 달라졌을 거라고······.
* 보로지노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단 한 사람에게도 총을 쏘지 않았고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실행한 것은 병사들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이 코감기에 걸렸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최후의 수송대 병사가 감기에 걸렸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보다 더 흥미로울 게 없다.
* 두 번째로 전선을 신중하게 시찰하고 돌아온 후 나폴레옹은 말했다. "체스의 말은 놓였다. 게임은 내일 시작된다."
* 유탄은 그와 엎드린 부관 사이에서, 밭과 목초지 가장자리에서, 무성한 쑥 더미 옆에서 연기를 내며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았다. '이런 게 죽음인가?' 안드레이 공작은 질투 어린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풀과 쑥을, 빙글빙글 도는 자그마한 검은 공에서 원을 그리며 피어나는 한 줄기 작은 연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 '난 죽을 수 없어. 죽고 싶지 않아. 난 삶을 사랑하고 이 풀과 흙과 공기를 사랑하는데······.'
* 안드레이 공작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인간들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들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애정 어린 부드러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연민, 우리를 사랑하는 형제들에 대한 사랑,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사랑, 원수에 대한 사랑, 그래, 하느님이 지상에서 전파하신 사랑, 마리야 공작 영애가 내게 가르쳐 준 사랑, 내가 이해하지 못한 사랑이야. 그것이 내가 삶과 이별하기를 아쉬워한 이유였군. 그것이 내가 살아남게 되면 따라야 할 길이었구나. 하지만 이제 너무 늦었어. 난 그것을 알아!'
* 피에르가 자기 집을 떠난 것은 단지 그를 옭아맨 삶의 요구들, 당시 상황에서 자신이 도저히 풀 수 없었던 그 복잡하게 뒤엉킨 요구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육체 상태는 언제나처럼 그의 정신 상태와 일치했다. 익숙하지 않은 거친 음식, 당시에 마시던 보드카, 포도주와 시가의 결핍, 갈아입지 않은 더러운 속옷, 침상 없이 짧은 소파에서 거의 뜬눈으로 보낸 이틀 밤, 이 모든 것이 광기에 가까운 흥분 상태에 피에르를 붙잡아 두었다.
* 프랑스군은 이미 모스크바에 들어 왔다. 피에르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행동하는 대신 앞으로의 일을 아주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점검하며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 '그래, 모든 사람을 대신해 나 혼자 해치우든가 죽든가 해야 해!" (···)피에르는 슬프고도 결연한 표정을 띠고서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을 했다.
* "내가 저, 저지른 짓을 용서하세요." 나타샤는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이따금 말을 잇지 못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 "나는 예전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눈이 보이도록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며 말했다. 행복한 눈물이 차오른 그 눈동자는 연민과 기쁨과 사랑이 어린 눈빛으로 수줍게 그를 쳐다보았다. 나타샤의 야위고 창백한 얼굴과 부은 입술은 흉하다기보다 무섭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안드레이 공작은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빛나는 눈동자였다. 그 눈은 아름다웠다.
* 이제 부상당한 안드레이 공작과 나타샤가 가까워졌으니 그가 나으면 예전의 약혼 관계가 회복되리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무도, 특히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은 더더욱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볼콘스키뿐 아니라 러시아 전체에 드리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다른 모든 예측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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