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죽기 직전에 살던 마을
파리에서 니스 가는 기차표를 예매해 놨는데
하루 일정이 비어서 갑자기 파리 근교 도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게 되었다.
난 사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대해 몰랐는데 민박집에서 만난 언니가 추천해 줬다.
언니 가이드북을 보고 파리에서 가는 방법을 적어 왔는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파리 북역까지 너무 멀어서
다른 역으로 왔더니 가는 방법도 모르겠고
표 끊으려고 승객들 줄 엄청 길게 서 있는데 직원들은 왜 잡담 중인건지?
나는 성격 급한 한국인이라고!
게다가 기차역에서 웬 흑인이 자꾸 나를 따라다니면서 익스큐즈미라고 해서 짜증 나고 무서웠다.
처음에는 뭘 물어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어차피 나는 아는 게 없으니 못 들은 척했는데
이 사람 계속 나를 따라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 가도 따라오고, 사라졌나 싶으면 또 나타나고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무서웠다.
마음은 급하고 짜증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그동안 쌓인 여행의 피로가 오늘 극에 달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혼자 엉엉 울면서 기차역 안을 돌아다녔다.
오늘 일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 가지 말까 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일단 가기로 했다.
다행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해서는 친절한 사람들만 만났던 것 같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죽기 직전에 살면서 그림혼을 불태웠던 마을인데
마을 자체도 평화로워 보이는 예쁜 곳이었다.
곳곳에서 고흐가 그린 마을 그림과 실제 마을 모습을 같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고흐가 본 것을 내가 보고, 고흐가 걷던 길을 내가 걷다니!
고흐 형제가 잠든 무덤 찾아가는 길에 밀밭인지 뭔지가 있는데
언덕에 부는 바람과 맑은 하늘과 풀소리가 너무 좋았다.
피로와 짜증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파리 기차역에서 울었던 거 다 보상받는 느낌!
이 마을에 너무 심취해 있었나 보다.
이제 슬슬 돌아가려고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빨리 파리로 돌아가려고 급히 걸어가는데 버스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
피자집 사장님한테 물어보니 버스 이미 끊겼다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으로 가라고 하셨다.
다행히 기차가 있어서 좀 기다리긴 했지만 무사히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