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킨 아이스크림 먹고 펌킨케이크 한 조각에 펌킨라테 한 모금
Aloha,
11월입니다.
하늘은 초겨울 분위기를 담고 있고 나무들은 더 샛노랗게 혹은 더 빨갛게 단풍물이 들어갑니다. 단풍잎들 사이사이에 보이는 빈 나뭇가지들이 늦가을 나무의 매력을 더해줍니다. 늦가을이라고 하기엔 공기에 겨울내음이 담겨 있고 초겨울이라고 하기엔 햇살이 가을의 온기를 담고 있습니다. 점심 먹고 나면 추곤증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하와이 생활 정리 후 돌아왔을 때부터 작년까지는 추곤증을 느낄 새도 없이 춥다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었기 때문에 추곤증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합니다. 어쩌면 추곤증이나 춘곤증은 사계절의 흐름에 몸의 생체 리듬이 맞춰져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맘때가 되면 미국 본토에서는 Daylight Saving Time, 일명 서머타임이라고 부르는 여름의 긴 낮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표준시간보다 한 시간 당겨져 있던 시간이 원래대로 다시 한 시간이 늦춰지는 '이벤트'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Daylight Saving Time 적용으로 아침 7시였다면 이제는 다시 새벽 6시로 시간이 바뀌게 됩니다. 디지털시계들 (스마트폰 포함)은 자동으로 시간이 변경되지만 아날로그시계는 일어나서 다시 맞춰야 하는 일상 속의 소소한 신기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와이는 항상 여름인 곳인지라 낮의 길이가 대체적으로 일정하기 때문에 Daylight Saving Time의 적용을 받지 않아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시간도 하와이의 뜨거운 햇볕에 더위 먹지 않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학부시절을 보냈던 작은 학교 도시는 이맘때가 되면 청바지에 후드티 입고 맛있는 로컬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펌킨 아이스크림을 먹고 근처의 반스 앤 노블 서점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려 펌킨 케이크 한 조각과 펌킨 라테를 마시며 공부하다 서점에서 책 구경 하다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캠퍼스 안에 수북이 쌓여있는 은행잎들 사이에 있는 은행 열매들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토끼처럼 총총 뛰어다니기도 하고, 캠퍼스 안에 있던 작은 숲 속의 단풍을 구경하며 '역시 여긴 단풍 맛집이야'를 읋으며 도서관으로 가던 날도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가을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더위에 지쳐있던 마음도 사계절의 변화를 이제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이제야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겨 사계절을 다시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마음에 가을 햇살이 들어올 만큼 여유가 생겼고 오랜만에 느끼는 가을의 낭만인지라 마음이 괜히 간질간질합니다. 12여 년째 잘 간직하고 있는 학부 후드티를 보면서 언젠가 가을을 온전히 만끽하러 다시 작은 학교 도시로 가보고 싶어 집니다. 학교 구경하며 새 후드티를 사는 그날이 언젠가 꼭 오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가을 낭만 한 조각 느낄 수 있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Mah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