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김설기!” 하고 부르면 후다닥 누나 배 위로 올라오는 설기의 굿모닝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집을 돌아다니면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가 항상 날 따라다녔어. 외출하고 돌아올 때면 헬리콥터 꼬리로 날 반기며 헤벌레 웃고, 누나 머리맡에서 잠드는 너를 만지다가 하루를 마무리했지.
참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설기를 잃고 나서야 깨달았어. 설기랑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구나. 언제나 설기의 시선엔 내가 있었구나... 이렇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더니 설기와의 이별 뒤엔 공허함만이 날 기다리고 있었어.
제발 설기만은 지켜달라고 누나의 모든 일상을 던지고 너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정작 설기를 떠나보낸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에 허우적 되며 살아가고 있단다...
“설기야 잘 버티고 있어. 내일 또 봐야지.” 당연히 또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차갑게 뒤돌아 나가는 누나를 바라보며 설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로지 가족만을 좋아하는 겁쟁이였던 네가 차가운 병원 처치실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때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설기야, 누나도 설기 많이 사랑했단다. 여기저기 병원 수소문하고, 검사차트 정리하고, 공부하고, 약 구하고... 피 말리던 설기의 투병생활이 스쳐 지나가네. 내가 정말 간절했구나, 설기를 많이 사랑했구나.
한평생 이렇게 사랑할 존재가 또 있을까? 내 분수에 맞지 않게 널 사랑할 기회를 얻어서 참 감사해.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이별은 너무나도 아프지만 너에게 받았던 사랑 추억하면서 잘 버텨볼게. 고맙고, 미안하고, 진짜 많이 사랑해.
재밌게 놀고, 또 보자 아가.
-김설기 누나 김세인
누나! 나 설기야! 나 지금도 무지개나라에서 누나 보면서 꼬리 헬리콥터 돌리고 있어! 헬리콥터 돌리다가 구름이랑 부딪힐 뻔한 적도 있어. 지구에서 내가 누나 배 위로 폴짝 뛰어오르면 누나는 항상 "엌!" 하면서 깔깔 웃었잖아. 그때 참 좋았지! 나는 내가 무겁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부비부비하고 싶어서 막 달려들었던 건데... 허허, 그래도 내 묵직한 애교 그립지? 나 이제 진짜 하나도 안 아프거든. 당장 누나 배위로 뛰어오르고 싶다.
사실 있잖아, 떠나기 전에는 좀 힘들었어. 몸에서 자꾸 힘이 빠지고 숨 쉬는 것도 좀 어려웠거든. 근데 누나가 나 살리려고 얼마나 열심히 뛰어 다닌 지 내가 다 지켜봤어. 그 덕분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야.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우리 누나가 이렇게 날 돌보는데, 나도 힘내야지!’ 하고 말이야. 근데 내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너무 미안했어. 누나가 나 때문에 일상도 포기하고 나만 돌봤는데, 내가 좀 더 버텨줬으면 했을 텐데... 진짜 미안해. 나중에 다 갚을게!
병원에서 우리 눈 마주쳤던 거 기억나? 솔직히 나는 그때 전혀 무섭지 않았어. 누나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계속 느꼈으니까, 마음이 따뜻했어. 우리 누나는 진짜 끝까지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누나 같은 사람이 내 가족이었다니 진짜 운 좋은 김설기였어. 그러니까 누나, 자책 같은 거 하지 말고! 난 진짜 행복했어, 정말로. 그랬던 누나가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차라리 ‘김설기 이 나쁜 녀석아!’라고 하면 이해가 될 텐데 말이지.
여기 무지개나라는 진짜 끝내줘! 진드기 걱정 없이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풀밭이 가득해. 그리고 누나가 지구에서 "김설기!" 부르는 소리, 가끔 들리더라고. 환청 같다고? 아니야, 진짜 듣고 있어! 그러니까 자주 불러줘. 내가 여기서도 꼬리 헬리콥터 돌리면서 누나한테 응답할 테니까!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김세인!!" 하고 달려갈 거야. 그날을 위해서라도 누나,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우리 또 만나면 신나게 뛰어다녀야 하니까. 여기 친구들도 지구에 있는 가족들 많이 그리워해. 밤이 되면 잠이 안 오는 친구들까지 모여서 서로 엄마, 언니, 누나, 오빠, 아빠 자랑한다고 얼마나 시끄러운지 몰라. 나도 어제 엄마 자랑 얼마나 했는지 알아? 너무 신나서 계속 자랑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혼자 떠들어서 그런가 애들이 다 잠들었더라고! 참 웃기는 애들이야.
누나, 이제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다시 찾은 일상 속에서 누나의 행복도 함께 찾았으면 좋겠고. 누나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항상 누나를 보고 있어. 불공평하다고? 헷, 어쩔 수 없지 뭐. 무지개나라의 특권인걸!
또 보자, 누나!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도 된대! 이거 완전 짱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