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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마셀 Jan 06. 2022

1. 소소한 행복은  수다를 타고 - 갱년기 조울증

어서 와, 갱년기는 처음이지?

 40대 후반 여자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묻는다면 뭐니 해도 편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다. 11시 30분경 맛집의 오픈 시간에 맞춰 친구와 식당으로 향한다. 맛있게 아점을 먹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으로 이동한다. 재빨리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메리카노와 갓 구운 빵을 주문한다. 디저트가 나오는 순간부터 여자들의 달콤한 수다는 시작된다.      


 오늘 만난 사람은 지수 언니다. 언니도 나처럼 20년 넘게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딸 하나를 둔 엄마라는 점에서 통하는 게 참 많은 언니다. 우린 코로나가 오면서 학원을 접게 되었고, 그 덕에 생에 첫 휴가 기간을 가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OO야 맛집이랑 정말 분위기 좋은 커피숍 발견했는데 시간 되면 점심이나 할까?.”

“너무 좋죠. 언니! 아싸!”


 월요일 아침부터 나의 소소한 행복은 시작되었다. 우린 유명한 장어 맛집에서 양념 장어를 배부르게 먹고, 언니가 발견했다는 전망 좋은 커피숍을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10000 랩이라는 2층 건물의 커피숍이었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찾아갈 수도 없는 고개 너머에 있는 곳이었다. 커피숍은 전체가 통유리 되어있어 유리 너머 선명한 짙은 파란색의 바다가 커피숍 안에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바다 안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평온한 곳이었다. 월요일이라 사람도 없었고, 푹신한 침대형 소파는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줄 최적의 장소였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식후의 아메리카노 한잔과 달콤한 케이크는 포기할 수 없는 진리이다.

‘밥 배 따로, 빵 배 따로 있으니까’



 온통 파란 세상에 둘러싸인 커피숍에서 우린 그동안 못한 수다를 시작했다. 커피숍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위로받고 싶어서였는지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언니에게 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른 폐경에 몸도 마음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오히려 창피하다는 생각에 아무한테 말하지 못하고, 혼자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언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OO아 솔직히 나도 요즘 갱년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 아침저녁으로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오락가락 하고, 아이들이나 남편의 모든 행동에 이유 없이 짜증이 나” 언니의 일상은 대충 이랬다. 하루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친구와 약속을 잡는다. 친구를 만나 4시간이고 5시간이고 하염없이 걷다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무기력함을 달랠 길이 없어 하루는 무작정 기차를 타고 북촌 역에 가서 코스모스를 보고 왔다고 한다. 어떤 날은 비음산 둘레길을 하염없이 걸었다가, 또 어떤 날은 차를 두고 2시간 남짓의 거리에 있는 친구 집을 걸어서 다녀왔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언니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갑갑한 마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밤이 되면 불면증으로 인해 잠을 잘 수가 없어 해 뜨기를 기다리는 날이 허다했다고 한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밤에는 곤히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걷기를 시작했다는 언니.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살이 빠져있길래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언니는 갱년기로부터 일상과 행복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던 거다. 살이 쏙 빠진 언니의 몸은 마치 그녀의 처절한 분투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언니 역시 폐경이나 갱년기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폐경 후 자궁에 혹이 생기더니 몸도 붓고 온몸이 아파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언니가 학원을 접은 이유는 코로나 때문도 있지만, 갱년기로 인해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서였다고 했다. 아이들은 다 커서 대학을 가고, 남편은 일 때문에 밖으로만 돌고, 저녁이 돼서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짜증이 난다고 했다.       

    

 “나 힘들어요 누가 나 좀 도와줘요!”라고 막 소리를 지르고 싶다가도 ‘내가 벌써 갱년기라니? 나 여자로서 끝났다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남이 아는 건 더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맘속 깊숙이 박혀있던 마음의 돌덩이를 꺼내 푸른 바닷속에 모두 던져버렸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웃픈 감정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폐경을 겪는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힘이 든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온몸이 아프고, 감정의 기복은 심해져서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내 나이에 벌써 갱년기라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였다. 이른 나이의 폐경이 나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뺏아갈까 봐 두렵고 숨기고 싶었다.      


지금 와서 느끼는 거지만 참 바보 같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폐경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호르몬이 줄어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갱년기’는 그 과정에서 몸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가는 기간인 것이다. 모든 변화와 적응에는 고통이 따는 법이다. 나를 괴롭히던 갱년기 증상은 그만큼 내 몸이 열심히 적응 중이라는 신호인 것이다.      


 폐경으로 인해 이제 내가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거 아닐까 걱정하지 말자. 오히려 내 몸의 아우성에 더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이 시기를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시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노년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이 간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공부해서 누구보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해야만 한다.       


 새싹이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고 꽃이 져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여자로서 30년 동안 열심히 꽃을 피웠으니까 이제 진정한 인간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이 잘 져야만 하는 시기이다.  갱년기는 100세 인생의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몸을 챙기며 인생 제2의 꿈을 향해 준비하는 시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럽마셀의 오늘의 Tip. 갱년기 조울증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갱년기는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지는 시기다. 이때는 주위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가족, 형제자매나, 친구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특히 분위기 좋은 곳, 전망 좋은 커피숍을 찾아 맘껏 수다를 떨고, 햇살 좋은 날 둘레길을 산책하며 몸과 마음에 세로토닌을 가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신이 현재 이런 상태라는 것을 주변인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와 공감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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