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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트레이크 May 24. 2023

낯선 곳의 편안함은 어디서 올까

퇴사 후 강원도 살아보기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이다. 얼마 전 이사를 준비하며 아내와 나는 우리가 얼마나 이사를 많이 했고 단련되었는지 새삼 서로 자랑을 하며 '성가심'을 털어내 보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피곤한지 약간의 푸념이 나왔다. "언제 까지 이 여정을 해야 하지? 왜 우리는 이런 길을 떠나게 되었을까.. 당신 때문이야..", "맞아 내 노매드 기질이 문제야, 근데 우린 돈 벌러 가는 거야.. 시간 투자!", "뭐라셔.."


우린 강원도로 열흘 전 이사했다. 하지만 전에 온 적이 또 있다. 3년 전 오랜 본사생활을 마무리하고 내 직장생활의 마지막 한해를 이곳 강원도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나마 회사에서 직책을 준다는 배려(?)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강원도로 발령이 났었고 아내와 함께 이사했다. 그때도 남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혼자 가지 왜 부인까지 데려가냐고 의아해했었다. 


나는 홀로 돈 벌러 가는 지방 근무보다 가급적이면 아내와 함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했다. '이 나이에 혼자 원룸에 들어가?..' 그때도 나는 퇴사 이후를 생각하며 나 만의 프로젝트를 꿈꾸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강원도 원주혁신도시는 강원도지만 경기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은 금방 흘렀다.


사실 그 발령이 있기 전 몇 년 전부터 회사 안에서의 내 운세는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주변의 나의 인맥들도 회사를 하나 둘 졸업하기 시작해 '스크럼'을 같이 짜줄 우군이라곤 몇 명 안 남았다. 발령 후 이곳에서의 업무 성과나 평가와는 상관없이 강원도 근무 기간은 1년으로 금방 끝났다. 그리고 나는 그때 원주를 떠나며 긴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함께 찍었다. 회사 첫 출근 후 30년 만의 일이었다. 


사실 그렇게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그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내 영혼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정해진 미래였다. 그래서 전부터 퇴사 시점은 내가 정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때의 반전은 운 좋게 퇴사 직전에 혁신도시 중심 입지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놓은 것이다. 중대형 아파트지만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아 가격이 저렴했다. 나는 다주택자다. 하지만 수도권대비 가격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때 분양받은 아파트가 올해 봄 입주를 시작하였고 나는 최종 입주를 결정했다. 이번엔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강원도로 오게 되었다. 이번엔 최소한 1년 이상 있을 것이다.


'강원도 살아보기를 제대로 해볼까'




이번엔 그때의 '직장인'이 아니다. 지금은 그냥 '자유인'으로 이주를 선택했다. 강원도로 다시 오게 된 이유는 여럿 있다. 첫째는 매우 현실적인 자산 관리를 위해서다. 새 아파트는 등기 치고 최소 2년을 보유해야 시세가 안정되며 제 가치를 찾는다. 그리고 매도 시 세금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즉 '몸테크'의 하나다. 둘째는 새로운 라운드를 위한 프로젝트 시도다. 이번 프로젝트는 낯선 곳에 살면서 다양한 장소를 체험하며 에너지를 충전해보려 한다. 그리고 셋째는 나의 부동산 투자 여행을 어떻게 이어갈지 잠깐 끊어서 생각해 보는 '리셋'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나는 서울 태생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본적이 거의 없다. 벗어난 적이 딱 세 번 있었다. 미국 유학시절과 대전 근무 시절 그리고 3년 전 그때의 갑작스러운 강원도 발령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강원도 원주로 지금 다시 돌아오다니.. 이래서 역시 인생 스토리를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원주를 떠날 때는 '퇴사'의 기억으로 다시 올 생각이 거의 없었다. 가던 사무실에 갑자기 나갈 필요가 없어졌을 때.. 내 자리에 누가 와서 대신 있다고 생각할 때.. 새롭게 적응하려 노력했던 낯선 출근길과 퇴근길이 그냥 흔한 길거리가 되었을 때..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게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까' 


이곳 새로 들어오는 아파트는 제법 근사한 곳이다. 치악산 국립공원 산자락을 하루종일 창너머로 볼 수 있는 집이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도 했지만 퇴사했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것이 마음 한편에서 좀 불편했다. '지난 그때의 무거웠던 감정들이 살아나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에 다시 온 이곳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도시를 감싸 안은 치악산 비로봉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굽어보고 있는데.. 변한 것은 그저 '나 자신' 뿐이었다. 지금은 직장을 막 졸업한 새내기 '자유인'이다. 그때와 같은 도시이지만 그래서 낯설다.


'아.. 공기가 다르네.. 햇살도..'




지금의 이 편안함은 어디에서 올까? 내가 자라고 성장하고 일했던 곳은 서울이다. 아내와 결혼하고 태어난 아들과 함께 가족이 보낸 시간의 대부분은 경기도 분당이다. 근데 지금은 왜 낯선 이곳도 편한 느낌이 들지.. 직장생활이란 강요된 틀을 벗어나서 그런 것일까. 이 모든 느낌이 저기 높고 거대한 산과 주변의 숲.. 이런 넉넉한 자연 덕분일까. 아니면 새로운 환경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어떤 갈망을 잠시나마 잠재우고 있는 걸까.


낮이 아닌 밤에는 심리 상태가 어떨까 궁금했다. 이제 겨우 열흘 지났을 뿐이긴 하다. 어차피 저녁 10시 넘어서는 요즘 내 에너지는 거의 고갈된다. 의도적으로 낮시간에 에너지 80% 소모 작전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방전 직전이라 그런가.. 낯선 집의 고요함을 이불 삼아 덮고는 금방 잠들어 버린다. 아내는 말한다. "여기 와서 뭔 잠을 그리 잘 자?", "응 그냥 와.." 


'내가 그냥 놓고 있는 이 들도 언젠가는 어떤 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어떤 씨줄과 날줄을 엮어갈 것인가 생각하다 또 하루 시간이 지나간다. 그런데 꼭 뭐를 해야만 하는가. 중요한 것은 늘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뭔가 하고 있다. 강원도에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Input 있는 곳엔 Output이 있기 마련이다. Process는 강원도 살아보기다. 


아직 그 Process를 설계 중이라 미완성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완벽한 세팅까지 필요 없다. 지금까지 삶의 이벤트들을 돌아보면 항상 초안 정도면 충분했다. 비행기 항로 자동조정장치는 이륙 후 '초당 1천 번' 정도 꼬리날개에 수정 명령을 계속 내린다. 나도 그래야 할 뿐이다.


'일단 이륙하고 수정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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