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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트레이크 Sep 03. 2023

지금 내가 과거의 '나'가 아니라고?

내 생의 본질도 '무빙'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최근 소식과 고민들을 나누다 후반에는 지나간 과거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함께 지낸 시간과 기억들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동시에 '나'라는 한 사람의 정체성도 그 시간 속에서 재확인한다. 그래서 웃고 떠드는 시간은 항상 짧고.. 미처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로 다음 만남을 이어간다.


나는 자동차 드라이브를 즐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제 제법 달라졌다. 그 무덥던 여름의 열기가 빠지며 기세 등등 했던 산과 나무의 짙푸른 색감은 확연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계절이 또 지나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팩트가 내 말랑한 감수성을 넘어 제법 서늘하게 다가온다.


드라이브하며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했다. 그런데 대화 도중 아내가 뭘 느낀 듯 말했다.


"근데 요즘 우리 대화의 상당 부분이 과거 이야기들이야. 느꼈어?"

"그런가?"

"아이 어릴 때 이야기.. 직장 스트레스받던 일.. 지난번 살던 집.. 또 놓친 투자까지.."

"그러네.. 미래 이야기가 별로 없나?"


나는 퇴사를 하고 익숙한 지역을 떠났다. 얼마 전 강원도로 이사해서 낯선 곳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은퇴라는 낯선 시간을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익숙한 과거 이야기들을 하며 지금을 보내고 있었나 보다. 그런 이야기들이 사실 꺼내기 편하고 서로 관계를 다져주기도 하지만 '나'라는 정체성을 자꾸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 30~40대에는 무슨 이야기들을 했었나?'


50대 중반을 넘어 생소한 '60'을 향해 조금씩 가다 보니 이런 게 마음의 생리적 현상인가 넘겨 본다. '나'라는 정체성은 과거의 시간에서 나오는 게 맞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시간들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들이다. 그 기억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꾸 '되새김 질' 하는 걸까? 내 몸은 노화되어도 예전 그대로의 '나'는 그대로인데 뭘 더 확인하고 싶은 건가.


그런데 최근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 몸이 아니다. 몸속의 모든 세포는 1년 안에 거의 모두 새것으로 바뀐다.' 




최근 '무빙'이라는 OTT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초능력 휴먼 액션'(?) 드라마라 한다. 여기에 나오는 주요 주인공중 한 명이 암호명 구룡포(류승룡 분)란 능력자다. 그는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 몸의 세포가 심하게 파괴되어도 바로 세포가 살아나서 회복된다. 그가 가진 초능력의 원천이 이 '세포 재생력'이다.


'허구 스토리긴 하지만 이런 초능력이 말이 되나?'


그런데 알고 보니 보통의 인간도 '세포 재생능력'이 상당하다. 주인공 구룡포의 회복 속도가 보통 사람보다 매우 빠를 뿐이지 우리 모두 이런 능력이 있다. 이게 생명체를 유지하는 비밀이다. 고려대 의대 교수인 생리학박사 나흥식이 일간지 칼럼에 소개했다.


"사람 몸속의 세포는 1년이 지나면 몸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성분이 새것으로 바뀝니다."

"즉 지금의 나는 1년 전과 모습만 비슷할 뿐이지 완전히 다른 세포와 성분을 가진 생명체입니다."


나만 몰랐나.. 생명력의 프로세스가 정말 놀랍다. 


생명체는 변해야 살아남는다. 내 몸은 매년 새로운 생명체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로 완전 자동 시스템인 것이다. 나이 들며 신체 기능은 계속 노후화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고 있었다. 


매년 내 몸은 이렇게 바뀌는데 '그러면 '나'라는 고유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내 육신의 세포는 1년 전의 그것과는 성분조차 다른 세포들의 집합체이다. 그럼 머릿속의 생각만이 나의 정체성인가? 혹시 머릿속 생각은 과거 기억에만 의존하며 제자리에 머물거나 거꾸로 가려고만 하는 건 아닌지..


'이거 잘못하면 몸과 머리가 따로 놀겠는걸?'


갑자기 생물학적으로 매년 새로 태어나는 몸이 너무 고맙다. 내 '생각 회로'도 매년 새것으로 바뀌면 좋겠다. 그런데 생각 기능의 업데이트는 'Automatic'이 아니고 '수동'으로 작동될 거 같다. 항상 새로운 변화를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부지런히 '수동 기어'를 조작해야 한다. 수동 기어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귀찮아도 손과 발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여름의 끝으로 달려가는 이 계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센티한' 가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나간 소중한 기억들을 열람해 보는 것도 좋지만 이번 가을은 다른 색감으로 채색해 보고 싶다. 수동기어를 힘차게 작동하기 위해 '멘털 각'을 잡아본다. 


나의 고유한 정체성, 삶의 본질은 바로 몸과 마음의 끊임없는 'Moving'이다.


'그런데 수동기어라? 후.. 손, 발 뭐부터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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