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년 동안 가던 동네 카페가 있었다. 2층 주택의 1층을 개조한 카페였다. 집에서 가깝고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고 커피도 맛있었다. ‘조금 비싸네.’ 싶은 디저트 가격에도 퀄리티가 높아서 일주일에 세 번은 그곳에 가 글쓰기를 하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환자의 가족이라는 위치는 희생이 많이 필요했다. 나는 사라지고, 아픈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삶이 매일 매 순간 반복이었다. 환자 가족으로 지친 날에는 그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 시간이 2년이었다.
그런데 작년 10월 말에 이젠 많이 가까워진 카페 사장이 나에게 안 좋은 소식이 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카페를 리모델링하려고 해요. 구조도 바꾸고, 이 기회에 메뉴 개발도 하고.“
“얼마나요?”
“두 달 쯤? 1월 중에는 다시 열거예요.”
정말 안 좋은 소식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장소가 사라진다. 이제 어디를 가지? 금요일에 꼭 먹었던 내 샌드위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나는 1월에 더 예쁘게 변해있을 카페를 기대하며 인사를 했다.
그 사이, 내가 글을 쓰며 쉴 수 있는 장소는 조금 떨어진 스타벅스였다. 사람이 가득하고, 메뉴는 획일적이고, 교감이나 교류는 꿈꿀 수 없는 곳. 특히 플라스틱 컵에 나오는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정말 별로였다.
나는 두 달은 금방 지나간다고 ‘동네 카페가 문을 열었나?’ 확인해 가며 기다렸다. 하지만 1월에도 소식이 없던 카페가 2월이 되도록 불을 켜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동네 카페를 장식한 알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을 봤을 때 정말 기뻤다. 드디어 내가 사랑했던 그곳에서, 내가 사랑했던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카페 문을 들어섰다.
오랜만에 보는 카페 사장이 반갑게 맞았다. 처음 보는 직원도 반가웠다. 그대로인 것도 있었지만 자리 배치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좋아했던 창가 자리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여럿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들어섰다. 창밖의 능소화를 보며 글을 쓰던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메뉴 역시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한눈에 들어오는 메뉴판이었는데, 이젠 글씨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인 것도 있었다. 치즈 케이크도 스콘도 그대로였다. 샌드위치를 보았다. 다섯 종류의 샌드위치가 사라지고 새로운 샌드위치가 생겼다. 나는 예전 샌드위치를 떠올리며 한 개뿐인 그 샌드위치를 시켰다.
“음? 이건 뭐지?”
이건 내가 알던 그 샌드위치가 아니었다. 양상추와 적색 양배추가 잔뜩 들어간 그 샌드위치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준 대로 먹어야 하는 이 샌드위치는 내가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많이 고민해서 만든 이 샌드위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다. 접시만 크고 그 접시의 반도 채우지 못하는, 모양만 예쁜 이 샌드위치에게 나의 사랑을 줄 수가 없었다.
좋아했던 유리 물컵을 대신하는 일회용 종이컵이, 너무나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커피의 맛조차 맛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인디 가수의 노래가 주로 나왔는데, 지금은 재즈 연주가 계속 반복되는 배경음도 떨떠름했다.
사랑이 그럴까? 연애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연인이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 둘 중 하나다. 왜 변했냐고 미워하든가, 헤어지든가. 나는 어느 쪽이었나 생각해 보면, 항상 헤어졌다. 연인이 변하면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카페를 사랑했다. 연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세 번이나 만났고, 위로받고 행복했다. 이제 연인이 변했다.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카페 사장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 혼자서 참 힘들었나 보다. 조금 편해지고 싶었나 보다. 혼자서 오래 앉아 있는 손님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먹고 마시고 가길 바라는구나.‘
사랑하는 것이 변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거나, 본질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선을 긋고, 이제 끝났다고 외면하진 못할 것 같다. 이미 변한 것을, 원래대로 돌아가달라고 해봤자, 내가 사랑했던 연인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각자가 사랑하는 방법은 각자의 삶과 취향과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그 어디쯤에서 절충하고, 아직 남아있는 좋은 것에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더는 사랑이 아니다.
동네 카페를 일주일에 세 번이나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샌드위치를 다시 먹는 일도 없을 것이다.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옛날 그 유리컵이 너무나 그립다. 그렇게 하나씩 사랑했던 것과 이별하고 받아들이고, 가끔 만나는 익숙한 친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