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D+3108 첫째

by 바다별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왠일로 일찍 일어난 딸이 묻는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어릴때나 해보던 생각.

초등학생 딸 덕분에 잠시 상상에 빠져본다.


건강하게만 살 수 있다면 오래오래 살고싶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시간이 남아돌텐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빠는 건강하기만 하다면 평생 살고 싶어. 너는 몇 살까지 살고 싶은데?”


첫째가 식탁 위 바게트를 집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나는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아빠, 엄마랑 살거야.”



적당한 때가 되면... 떠나거라...

하하하...

하루 빨리 키워서 자유로워지려는 원대한 계획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아빠, 엄마가 아니라 네 손주들 바라보며 살라고 말해주곤 대화를 끝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손아랫 사람, 특히 자식을 향한 헌신과 사랑은 흔하지만 손윗사람을 향한 사랑은 드물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에 아주 크게 동의하는 편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나 역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의 반 만큼도 부모님께 쏟지 못하니 말이다.




나 역시 '아빠를 향한 아이들의 마음'이 계속 지금 같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아빠 좋아”라며 세상의 전부인 양 치대붙지만 더 자라서 자신의 삶을 혼자 걷기 시작하면 '아빠'를 돌아볼 여유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없는 순간이 왔을때, 뒤늦은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부모를 향한 아이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쪼그라든다.

걱정하고 신경쓰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마음은 있지만 좌충우돌하며 내 삶을 챙기다보면 어느새 부모님은 가장 마지막으로 밀려나게 된다.

아마 ‘엄마, 아빠는 다 이해해 주실거야’ 라는 기대가 있기때문 아닐까.


그런데 내가 아빠가 되어보니 알겠다.

부모라 해서 항상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위해 참고 견디고 있지만, 아이가 주는 사랑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아빠, 엄마와 살겠다는 딸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부모님께 이렇게 따뜻한 말을 했던게 도대체 언제일까.

오늘은 시골집에 전화라도 한 통 해야겠다.

딸 덕분에 치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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